時事論壇/國際·東北亞

[선우정의 글로벌 터치] - 以夷制夷(이이제이)

바람아님 2014. 7. 12. 09:05

(출처-조선일보 2014.07.12 선우정 국제부장)

[以夷制夷(이이제이) - 적을 이용(利用)하여 다른 적을 제어(制御ㆍ制馭)함]

일본의 과거 침략은 시시콜콜 따지면서
중국의 침략 역사는 北方族 만행으로 간주
아직 小中華 이념이 남아있어서란 해석도
중국의 華夷 질서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선우정 국제부장'중국의 근대'를 연 혁명가 쑨원(孫文 | Sun Wen)이 1924년 일본에서 한 연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중국은 왕도(王道)에 의해 그들을 감화시켰고, 감동을 한 그들은 조공했다." 
'그들'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말한다. 
'스스로 중국을 상국[上邦·상방]으로 숭배했고 중국의 속국[藩屬·번속]이 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때 식민지 한국의 한 신문사 특파원이 "한국의 독립은 왜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쑨원"일본에서 그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다"고 냉랭하게 답했다. 
당시 일본'대(大)아시아주의'를 주장하던 쑨원(孫文 | Sun Wen)의 후원자였다.

90년 후 중국 지도자의 역사 인식은 흘러간 세월만큼 달라진 듯하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양국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 전쟁터로 
같이 향했다"고 연설했다. '어깨를 나란히 했다[竝肩·병견]'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쑨원의 연설은 우리를 욱하게 하고 시진핑의 연설은 우리를 들썩이게 하지만, 역사를 읽으면 다른 기분을 느낀다.

시진핑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말한 임진왜란 당시 우리 임금의 중국관(觀)을 상징하는 사건이 '걸내부(乞內附)' 파동이다. 
'내부'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속으로 들러붙는 것을 뜻한다. 백성과 강토를 버리고 중국에 복속하겠다고 요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개전 초기 일본과 조선의 결탁을 의심했다. 
임금은 정성을 다해 숭배했지만 중국은 조선을 일본과 같은 '이(夷)'의 일부로 본 것이다. 
명나라의 파병은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장(戰場)의 요동 확대를 우려해 내린 고육책이었다. 
중국은 유구(琉球)국을 통해 일본의 목표가 중국 침략이란 사실을 조선보다 먼저 파악했다.

조선 땅에 진입한 명군(明軍)에 관한 기록은 비참하다. 
일국의 재상이라는 영의정이 군량을 제때 못 댄 잘못으로 명나라 장수 이여송 앞에 꿇어앉아 사죄했다. 
굶어 죽는 시체가 거리를 덮던 때였다. 
영의정 류성룡은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기록했다. 
시진핑이 '한·중 전우애(戰友愛)'의 상징으로 언급한 장수 진린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었다. 
"그 군사가 (조선 관료의) 목을 끈으로 묶고 끌고 다녀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 진린과 전우애를 나눴다는 이순신도 명군에 대해 "인명(人命)과 재물을 빼앗으니 백성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 도망갔다"는 
기록을 남겼다. "명군이 데려간 조선 여자가 수만 명이었고, 조선 백성 사이에 '왜적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란 이야기가 
돌았다"고 기록한 사서(史書)도 있다. 왜적의 약탈은 부스러기라도 남기지만, 명군의 약탈은 싹 쓸어버린다는 뜻이다. 
조선의 임금·재상·백성 누구도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들이 없었으면 조선은 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재조지은(再造之恩·망하게 된 것을 구해준 은혜)'이란 깃발 아래 썩어 없어진 한족(漢族)의 명나라를 몇 백 년 
동안 숭배하다가 결국 내 나라까지 잃었다. 빚잔치는 100년 전에 끝난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선 시시콜콜 과거를 따지지만 중국엔 관대하다. 
중국의 침략사를 북방 오랑캐로 한정하고 한족의 중국을 우리와 일치시키는 '소중화(小中華)' 이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란 
관점도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이런 한국관(觀)이 확대되고 있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21세기 중국의 화이(華夷) 질서에서 우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여전히 '이(夷)'에 위치한다면, 지금 우리는 중·미·일 대립이란 큰 그림 속에서 
중국의 전통적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장기 말처럼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각 주>
화이(華夷) - 중국 민족과 그 주변의 오랑캐
以夷制夷(이이제이) - 적을 이용(利用)하여 다른 적을 제어(制御ㆍ制馭)함.
    [ 以 써 이/ 夷 오랑캐 이/ 制 절제할 제,지을 제/ 夷 오랑캐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