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사진작가 김귀욱의 포토 에세이:⑨알함브라 궁전

바람아님 2014. 7. 28. 11:17

(출처-조선일보 2014.07.11 사진작가 김귀욱)


 이슬람 왕이 국가보다 더 사랑했던 알함브라 궁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회에 갔다가 한 여고생이 클래식 기타를 들고 트레몰로 주법으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했을 때 
나는 미치는 줄 알았다. 그런 연유로 기타를 사게 되었고 이름 모를 그 여학생은 지금도 나에겐 기타의 여신이다.

프란치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가 작곡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흘러 나오면 나는 아련한 꿈결에 젖어 
안달루시아의 풍경속을 헤맨다.
이 맘때 쯤 소피아 로렌의 영화가 연상되는 ‘해바라기’가 들녘을 가득 메우고 코르도바 골목 골목 지금도 무어인들이 살고 있는
집안에는 영락없이 파티오라는 작고 예쁜 정원들이 앙증맞게 자리잡고 있다. 식민지 시대 때 브라질에서 가져와 유럽, 
아프리카에 퍼져 세비야의 가로수가 된 보랏빛 꽃망울을 터뜨리는 자카란다, 멀리 흰꽃으로 덮힌 만년설 시에라네바다 산맥….
그리고 예쁘게 가꾸어진 싸이프러스 사이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 펼쳐진다.

유럽의 피레네 산맥 아래 서남쪽으로 펼쳐진 이베리아 반도. 포에니 전쟁 이후 한니발이 로마를 정복하면서 ‘토끼가 많은 땅’이란
의미의 ‘히스패니아’로 불리우는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하였다. 
로마 멸망 711년 아랍계 무어인들이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와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면서 이슬람교가 급속하게 퍼져갔다. 
그라나다는 11세기 경 무어인(Moors)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세웠던 왕국이었다. 
당시 카스티야(Castilla), 아라곤(Aragon) 왕국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로마교황은 서로 전쟁을 멈추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기독교 왕국들은 연합하였고 이슬람 문명을 몰아내기 위한 레콩키스타(Reconquista·
국토 회복 운동)가 전개되면서 무슬림 세력권의 도시들이 점차 점령되었다.

1492년 그라나다는 약 10km 떨어진 산타 페 Santa Fe에 주둔한 이사벨 여왕에 의해 점령되면서 마지막 남은 이슬람문명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알함브라(Alhambra·붉은 궁전)는 헤네랄리페,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사바, 
나스르 궁전 등으로 나뉘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되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의 선율을 타고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그라나다 이슬람교도인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보아브딜 왕은 이사벨 여왕에게 항복하면서 3가지를 부탁했다고 한다. 
첫째, 알함브라 궁전을 잘 보존 해달라, 둘째, 다 데리고 갈 수 없는 이슬람인들을 국민으로 받아 달라, 셋째, 남아 있는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
그가 이사벨 여왕에게 항복하고 쫓겨나면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 언덕 길을 말을 타고 가다가 한없이 눈물을 흘리자 신하가 
“나라 잃은 설움에 우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왕은 “아니다 다시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지 못해서 슬프다”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스페인은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공원 처럼 유럽과 이슬람, 그리고 집시 문화가 모자이크된 매력적인 나라이고 
크게 중앙의 카스티야, 서쪽 갈리시아, 북쪽 바스크, 동쪽으로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루냐
남쪽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나뉜다. 
그 중 카르멘이 빨간 장미를 꽂아 더욱 섹시한 아름다움을 더 하듯 아랍 문화가 섞인 안달루시아 문화는 세계 여행객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안달루시아 지방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은 형용할 수 없다. 
이베리아 반도 무어인의 마지막 보아브딜 왕의 눈물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선율에 맞춰 궁전의 파티오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슬프게 슬프게 떨어진다.

아랍어로 알함브라가 붉은 것이라는 의미처럼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다.


13-14세기에 걸쳐 건축된 알함브라 궁전은 정교한 건축술에 의해 물은 항상 흐르지만 고여있는 물이 없다. 궁 뒤에 댐을 만들어 흐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13-14세기에 걸쳐 건축된 알함브라 궁전은 정교한 건축술에 의해 물은 항상 
흐르지만 고여있는 물이 없다. 궁 뒤에 댐을 만들어 흐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알함브라 궁전 아라야네스 파티오(뜰).
알함브라 궁전 아라야네스 파티오(뜰).

궁전의 정원에 무어인들이 좋아하는 장미와 오렌지 나무를 심었다.
궁전의 정원에 무어인들이 좋아하는 장미와 오렌지 나무를 심었다.

독수리 모양의 고리는 말을 묶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독수리 모양의 고리는 말을 묶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해발 740m 위에 지어진 알함브라 궁전.
해발 740m 위에 지어진 알함브라 궁전.

알함브라 마지막 왕조인 나스르 궁전의 종유석 천장.
알함브라 마지막 왕조인 나스르 궁전의 종유석 천장.

코란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며 우상을 금지하고 있다. 이 율법에 따라 아라베스크 문양은 문자와 식물 그리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배합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코란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며 우상을 금지하고 있다. 
이 율법에 따라 아라베스크 문양은 문자와 식물 그리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배합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싸이프러스 길로 만들어진 헤네랄리페 가는 길.
알함브라 궁전의 싸이프러스 길로 만들어진 헤네랄리페 가는 길.

코르도바의 수호신 라파엘 천사.
코르도바의 수호신 라파엘 천사.

서기 780년 아브드 알라흐만 1세에 의해 건설되어 그 후 3번의 확장공사를 진행되어 이슬람, 기독교, 카톨릭 문화가 섞여있다.
서기 780년 아브드 알라흐만 1세에 의해 건설되어 그 후 3번의 확장공사를 진행되어 이슬람, 기독교, 카톨릭 문화가 섞여있다.

메스키타 사원 내부 천장. 메스키타란 스페인어로 모스크라는 뜻.
메스키타 사원 내부 천장. 메스키타란 스페인어로 모스크라는 뜻.

코르도바 메스키타 사원. 메스키타란 스페인어로 모스크.
코르도바 메스키타 사원. 메스키타란 스페인어로 모스크.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코르도바 구시가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골목길.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코르도바 구시가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골목길.

1929년 스페인·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가 만든 스페인 광장.
1929년 스페인·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가 만든 스페인 광장.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세비야 마차는 흥정에 따라 1시간에 40-50유로를 준다. 대성당, 알카사르, 황금탑, 스페인 광장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세비야 마차는 흥정에 따라 1시간에 40-50유로를 준다. 
대성당, 알카사르, 황금탑, 스페인 광장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세비야 성당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항상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 거리 악사. 보라색 나무가 자카란다.
세비야 성당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항상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 
거리 악사. 보라색 나무가 자카란다.

구슬프게 연주하는 여인과 비파 비슷한 처음 보는 악기.
구슬프게 연주하는 여인과 비파 비슷한 처음 보는 악기.

세비야는 오페라 도시이기도 하다. 로시니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 중에서 알마비바 백작의 노래를 듣고 로시나가 '방금 그 노래 소리는(una voce poco fa)' 를 불렀던 발코니.
세비야는 오페라 도시이기도 하다. 로시니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 중에서 알마비바 백작의 노래를 듣고 
로시나가 '방금 그 노래 소리는(una voce poco fa)' 를 불렀던 발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