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詩와 文學

[가슴으로 읽는 동시] 김장하던 날

바람아님 2014. 12. 6. 18:50

(출처-조선일보 2014.12.06 이준관 아동문학가)


  김장하던 날


   한 포기씩 소금 절여
   채반마다 가득하게
   숨죽여 쟁여 있는
   노란 얼굴 배추들

   항아리
   가득 재이며
   엄마 손이 바쁘다.

   마늘 까기 돕느라고
   눈물 흘린 아이들
   고모네 식구까지
   거실에 둘러앉아

   "애미야,
   간 좀 잘 봐라."
   온 집안이 시끄럽다.

   ―박근칠(1942~ )

가슴으로 읽는 동시 일러스트


월동 준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김장이다. 

김장할 때는 먼저 통배추를 쪼개어 소금에 절여 채반에 차곡차곡 쟁인다. 

온갖 맛깔스러운 양념거리를 버무려 만든 김칫소를 소금에 절인 배추 포기에 켜켜이 채우면 김장은 마무리된다. 

그렇게 김장 김치를 담그면 겨울 채비는 끝나고 길고 긴 겨울이 온다.

김장하는 날은 온 식구뿐만 아니라 친척과 이웃까지 모두 와서 일손을 거든다. 

아이들도 어른들이 시키는 허드렛일을 하느라 바쁘다. 

할머니도 엄마에게 "애(에)미야, 간 좀 잘 봐라" 하고 간을 잘 맞출 것을 당부한다. 

김장 김치에는 엄마의 손길이 안 닿는 데가 없다. 

그러기에 김치 맛은 엄마 손맛이라던가. 

김장 김치 한 가닥 찢어 맛을 본 엄마가 손가락을 쪽 빨며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 

그해 김치 맛은 꿀보다도 더 달기 마련이다.



                                                2014년 11월 8일 김장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