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한·중 예민" "이른바 위안부" … 일본 편든 미 국무부 넘버 3

바람아님 2015. 3. 4. 10:24

[중앙일보] 입력 2015.03.04

평소 신중했던 셔먼 작심발언
"역사교과서 놓고도 서로 이견"
수차례 한·중 한데 묶어 언급
중국 견제, 한·일 관계 개선 압박
전문가 "한·미동맹 빈틈 없다지만
정부, 레토릭에 취할 때 아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이 한·중·일 3국에 갈등 자제를 촉구하며 일본에 치우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셔먼 차관이 지난달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란 측과 협의를 진행한 뒤 호텔을 나서는 모습. [AP=뉴시스]

곱씹어볼수록 발언 하나하나가 심상찮다. 타이밍과 대상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을 놓고 외교 후폭풍이 거세다. 대미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미국이 일본을 끌어안으면서 한국의 선택을 강요하는 뉘앙스를 담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미 국무부 서열 3위의 정무차관의 발언이라고 보기엔 거친 표현이 적지 않다.

 셔먼 차관은 “한·중은 ‘이른바 위안부(so-called comfort women)’ 문제로 일본과 티격태격해(quarrel) 왔다”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일본의 반발을 무릅쓰고 확립한 ‘성 노예(sex slavery)’란 정의보다 한참 후퇴했다. 한·일 외교당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하는 중인데, 이를 한낱 다툼이라고 한 것도 사려 깊지 못했다는 평이 외교가에서 나온다.

 셔먼 차관은 또 “(한·중·일은) 역사교과서 내용을 놓고도 서로 이견(disagreement)이 있다”고 했다. 외교용어로 ‘이견’은 논쟁의 소지가 있는 사안에서 모든 당사자를 배려하기 위해 쓰는 단어다. 표현 자체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정부가 미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삭제하라고 요구했고, 미 역사학회 회원들이 이런 시도를 규탄하는 성명까지 낸 것을 감안하면 일본 측 입장에 기운 표현이다.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어내는 일은 쉽다. 하지만 이런 도발은 마비를 유발한다”는 발언도 다른 나라 지도자에게 쓰기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셔먼 차관은 평소 정제되고 신중한 표현을 쓰는 인물이다. 1월 29일 방한 당시 미 대사관에서 가진 언론 간담회에서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의미를 묻자 “대통령의 발언을 해석하는 건 내 소관이 아니다” 등으로 피해간 일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셔먼 차관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북정책에 관여하며 수많은 기밀을 다뤘고, 비밀 임무도 수행했다”며 “그런 신중한 인물이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야기들을 한 건 뜻밖”이라고 전했다. ‘작심발언’이란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특히 셔먼 차관은 지난 1월 말 중국·한국·일본을 차례로 방문했다. 그런 뒤 나온 발언이어서 의미가 간단치 않다. 셔먼 차관도 “2월 초 순방 중에 종전 70년이 아태 지역에서 굉장히 중대한 사안이란 점을 느꼈다. 지금이 바로 동북아 지역에서의 긴장 완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셔먼은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으며, 2016년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셔먼 차관이 한국과 중국 방문 길에 반일 정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작심발언 속에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 방향이 담겼다고 보고 있다. 한·미 간 역사 인식에 차이가 있다거나, 역사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했다기보다는 그간 미국이 가장 큰 고민으로 여겼던 중국 견제와 한·일 관계 악화라는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 셔먼 차관은 “한·중이 일본의 방위정책 변화에 예민하게 군다”고 하는 등 한국과 중국을 한데 묶는 예를 여럿 들었다. 멀어지는 한·일 관계와 밀착하는 한·중 관계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셔먼 차관의 이야기는 미국의 기본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한·일이 역사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협력을 강화하길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가 한·미 간에 한 치의 빈 틈도 없다(no daylight)고 하는데 이는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것이지 다른 부분에선 빈틈이 있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재정을 투입해 아시아 지역 안보에서 미국을 지원하는 일본을 더 중시하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한·미 동맹이 최상의 상태’라는 외교 레토릭(수사적 발언)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고 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미국이 한국과 중국을 한편으로 놓고 이야기한 것은 그간 금기사항이었다”며 “‘한·중이 함께 일본을 공격한다’는 일본 측의 시각이 반영됐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외무성에 전담 외교관을 두고 워싱턴 DC에 ‘한국은 리틀 차이나’라는 논리를 확산시키고 있다”며 “그런 로비의 소산일 수도 있어 일회성으로 간단히 치부할 게 아니다”고 우려했다.

유지혜·안효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