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전문기자 칼럼] 레바논에서 돌아본 한국의 종교 간 平和

바람아님 2015. 3. 10. 17:14

(출처-조선일보 2015.03.10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사진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터번 같은 천으로 머리를 감싼 사람, 흰 모자와 검은 모자를 쓴 사람, 검은 셔츠에 흰색 로만 칼라를 

두른 사람…. 기자의 맞은편 자리는 중동 지역 모든 종교·종파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주 레바논의 한 마을에서 열린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현지 종교 지도자들의 

간담회 풍경이었다. 그들은 수니파·시아파 등 이슬람과 정교회(正敎會), 로마가톨릭과 

기독교 마론파 등의 성직자였다. 거리 풍경도 그랬다. 

모스크와 교회·성당의 십자가, 첨탑이 번갈아 보였다.

이슬람이 국교(國敎)가 아닌 레바논에는 합법적으로 인정된 종교·종파가 18개라고 했다. 

이슬람 시아파 내에서도 '12 이맘파' '알라위파' '드루즈파' '이스마일파' 등 네 가지가 있고, 

정교회도 그리스·아르메니아·시리아 정교회 등 세 파에 이른다고 했다. 

우리나라 경상북도만 한 면적에 인구는 410만명인 레바논에서 대통령은 마론파,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각각 나눠 맡도록 법으로 정했다고 한다. 

여러 종교가 평화를 유지하며 공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는 레바논 국민의 절박함으로 보였다.

그런 노력에도 종교가 정치가 된 사회는 힘든 일이 많아 보였다. 

작년 5월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공석(空席)이라는 점도 그 한 예였다. 종교인 간의 만남도 쉽지 않은 듯했다. 

참석자들은 "한국 불교 스님 덕분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고 했고, 자리를 주선한 동명부대 관계자도 

"실제로 이분들을 한자리에 초대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과 만나면서 새삼 우리 현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에 모인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이웃 종교의 성지(聖地)를 함께 순례하고, 

이웃 종교의 명절 행사를 찾아가고 축하하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선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IMF 외환 위기 사태에 따른 실업 문제나 세월호 사고 등 국력 결집이 필요할 때 종교인들이 앞장서는 모습도 떠올랐다. 

왜 한국이 '모범적인 다종교 사회'라는 평가를 받는지 저절로 이해됐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런 종교 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제 우리도 더욱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도 '종교 편향'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의 종교 편향 논란을 비롯해 현 정부 들어서도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는 교회 내 신앙고백이 문제가 돼 

결국 자진 사퇴했다. 최근엔 지리산 왕시루봉 인근의 개신교 선교사 유적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것인가를 놓고, 

또 서울 지하철 9호선의 역 이름을 놓고 '봉은사역'과 '코엑스역' 간에 논란이 있다.

종교는 신앙의 진리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 이외의 일상생활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과 조심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아도 분노 지수가 높은 대한민국 사회다. 종교 문제는 인화성도 강하다. 

우리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이념·지역·계층 간 평화뿐 아니라 종교 간 평화도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종교 갈등에 관한 한 거의 '청정(淸淨) 지역'을 유지해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낙관보다는 노력이 필요한 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