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26 이한우 문화부장)
- 이한우 문화부장
은사이신 동양철학자 김충렬(金忠烈· 1931~2008) 전 고려대 교수가 그리울 때면 그의 책을 뒤적이곤 한다.
얼마 전 그의 책 '동양사상산고 II'에서 다음과 같은 뜻밖의 내용을 읽게 됐다.
1993년 여름 중국 베이징대의 탕이제(湯一介·1927~2014) 교수가 서울을 방문해 김 교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탕이제 교수는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중국사상 연구의 태두다. 같은 해 5월에는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중국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존에 큰 공헌을 했다"는 칭송을 들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대만에서 공부한 김 교수를 만난 탕 교수의 일성이다.
"왜 다른 (중국 관련) 학자들은 모두 앞다투어 중국을 방문하는데 그대만은 초청도 거부하고 중국 학자들을
만나주지도 않는가?" 이에 김 교수는 곧장 단호하게[直截] 대답했다.
첫째, "나는 한국전쟁에서 직접 싸운 전사(戰士) 출신이다.
그때 우리는 압록강까지 쳐올라가 이제 통일이 다 되었다고 믿었는데 난데없이 중공군이, 그것도 선전포고도 없이
서아(鼠兒·쥐새끼)처럼 몰래 쳐내려오는 바람에 허사가 되어 아까운 피만 흘리고 그 대가를 찾지도 못했다.
이 피의 장부는 지금 비록 국교(國交)가 열렸다고 하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둘째, "나는 16년간이나 중화민국에 유학하면서 장학금과 연구비를 받아 큰 은혜를 입었다.
중국은 아직도 중화민국과 적국(敵國) 관계를 모두 풀지 못하고 있다. 의리상 선뜻 옛 친구와 은혜를 입은 중화민국을
저버리고 중국을 갈 수가 없었다. 마치 배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대북(臺北·타이베이)을 방문했을 때
어느 친구가 '너 중국 갔다 왔느냐'고 묻기에 '중화민국과의 신의를 생각해서 아직 안 갔다'고 대답하니까 그 친구 말이
'아니다. 이제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우리도 다녀왔는데 네가 다녀온들 어떤가? 한번 가보라'는 것이었다.
이제 의리 문제는 한결 가벼워졌다."
셋째, "중국 대학이나 학술단체들의 초청장을 받아보면 비행기표며 참가비며 숙식비, 심지어 관광 비용까지 우리가 부담하게
되어 있는데 이런 초청장을 받고서 중국에 갈 수는 없다."
그 후 20년이 넘게 세월이 흘러 김 교수나 탕 교수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을 대표했던 두 동양철학자의 대화는 지금 읽어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무엇보다 이미 20년 전에도 중국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시 김 교수는 이를 "중국 사람들은 스스로 대국인(大國人)으로 자처하면서 우리를 소방인(小邦人)이라 경시하는 습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20년 전이면 한국이 5000년 역사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을 낮추어 보았다는 그때다. 그런 시절에도
중국 석학이라는 사람의 인식이 저러했으니 지금은 지식인이고 외교관이고 정치인이고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느새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우리의 실상(實相)이다.
지금 중국 사람들을 만나 김충렬 교수처럼 말하고 행동했다가는 거대한 풍차를 향해 시대착오적으로 돌격하는 돈키호테로
몰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돈키호테로 몰릴지언정 할 말은 하는 우리의 지식인·외교관·정치인을 찾아볼 길이 없다는 데 있다.
특히 김 교수의 첫 번째 대답이 20년이 지난 지금, 가슴 저미는 울림을 안기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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