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15-4-30
집을 나간 아들이 며칠째 소식이 끊겼다면? 처음에 화가 치밀다가도 나중엔 '제발 별 탈 없이 돌아오라'고 빌게 마련이다. 부모 심정은 아마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 안토니 블룸 대주교의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며칠 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네 걱정을 많이 했단다" 하고 말문을 연다. "왜, 사고라도 당한 줄 아셨어요?"라는 반문에 아버지의 대답이 이어진다. "네가 살든지 죽든지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참으로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지."
러시아 아버지가 시공을 넘어 뇌리를 스친 것은 순전히 '충무공 할머니' 덕분이다. 여든 고령의 이종임 할머니가 서울 도심의 옛 명보극장 구석 자리에 있던 충무공 이순신 표석을 30년째 청소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장군의 생가터에 설치된 기념 표석은 보행자들에게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표석 주변은 늘 쓰레기와 취객들의 구토물로 지저분해지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매일 물수건으로 돌을 닦고 빗자루로 주위를 쓸었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한 평짜리 신문가판대를 운영한다. 50여년간 껌과 신문을 팔았다. 혈혈단신으로 갓난아이를 업고 상경해 안 해본 고생이 없었다. 하지만 나라 사랑만큼은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삶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표석 관리를 안 한다고 공무원을 탓할 게 뭐 있어. 옆에 있는 나라도 치워드려야지." 할머니는 충무공 탄신 470돌인 엊그제 표석 앞에 조촐한 제사상을 차렸다. 그의 선행이 잠자는 애국혼을 깨우는 작은 등불이 되고 있다.
소설가 디킨스는 "지쳐 떨어진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울새'들이 있다. 나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충무공 할머니가 밝힌 등불로 세상은 더 밝아졌다.
배연국 논설위원
러시아 외교관이던 대주교의 아버지는 1917년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에 정착한다. 그는 외교관직과 영원히 결별하고 노동자의 길을 걷는다. 주로 철도와 공장에서 힘든 노동을 계속했다. 한 번도 예전의 화이트칼라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다. 공직자로서 러시아의 비극에 책임을 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족적은 아들 대주교에게 평생의 등불이 되었다.
러시아 아버지가 시공을 넘어 뇌리를 스친 것은 순전히 '충무공 할머니' 덕분이다. 여든 고령의 이종임 할머니가 서울 도심의 옛 명보극장 구석 자리에 있던 충무공 이순신 표석을 30년째 청소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장군의 생가터에 설치된 기념 표석은 보행자들에게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표석 주변은 늘 쓰레기와 취객들의 구토물로 지저분해지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매일 물수건으로 돌을 닦고 빗자루로 주위를 쓸었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한 평짜리 신문가판대를 운영한다. 50여년간 껌과 신문을 팔았다. 혈혈단신으로 갓난아이를 업고 상경해 안 해본 고생이 없었다. 하지만 나라 사랑만큼은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삶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표석 관리를 안 한다고 공무원을 탓할 게 뭐 있어. 옆에 있는 나라도 치워드려야지." 할머니는 충무공 탄신 470돌인 엊그제 표석 앞에 조촐한 제사상을 차렸다. 그의 선행이 잠자는 애국혼을 깨우는 작은 등불이 되고 있다.
소설가 디킨스는 "지쳐 떨어진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울새'들이 있다. 나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충무공 할머니가 밝힌 등불로 세상은 더 밝아졌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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