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6-4
혹자는 세계경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장 제조업체들이 영향을 많이 받아서다.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의 상장 제조업체는 매출액이 늘었다(중국과 일본은 지난해 3분기까지의 누계 실적 기준). 한국 기업만 유일하게 매출액이 감소했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고장 났다는 얘기다. 더 심각한 건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2013년부터 꼴찌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그전에는 일본이 단골 꼴찌였다. 하지만 2013년부터 역전됐다. 그해 초부터 본격화된 아베노믹스 영향이 컸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회복되면서 한국이 꼴찌로 전락한 거다. 올해도 좋아질 것 같지 않다. 경쟁력이 나아지고 있지 않아서다. 수출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은 상대적으로 좋았던 비제조업에 영향을 미칠 게다. 대응을 잘못하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 있다. 2003년 홍콩 경제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영향을 미친 것처럼.
기업 부실이 커지고 있는 건 그래서다. 기업이 장사해서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 지난해 세 기업 중 한 기업이었다. 2010년 다섯 기업 중 한 기업이었는데, 크게 늘었다.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면서 3년 연속 부채가 자기자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기업은 진짜 부실기업이다. 이런 기업의 부채가 지난해 64조원이나 된다. 상장 제조업체만 따진 액수가 이 정도다.
이처럼 장황하게 설명하는 건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서다. 첫째는 가계부채도 문제지만 기업부채가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경제위기 하면 늘 지적되는 게 가계부채다. 맞는 얘기다. 3월 말 현재 1100조원에 육박하니 말이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자. 가계부채의 진짜 문제는 저소득층 부채다. 소득으로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소득층(1분위 계층) 부채는 전체 가계부채 중 5%가 채 안 된다(2013년 말 기준). 게다가 가계 전체적으로도 아직은 소득 중 20% 정도만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쓸 뿐이다. 이에 비하면 기업부채는 더 심각하다. 서둘러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실기업의 부채가 60조원이 넘는다.
게다가 기업부채는 경제 활력과 직접 연관된다는 점이다. 기업은 성장동력이다. 기업이 위기면 경제가 위기를 맞는 이유다. 국민의 불안감과 사기도 기업의 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년 실업, 양극화 심화, 노인 빈곤, 세수 펑크 등 고질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만일 무한 질주를 거듭하는 구글과 아마존, 애플 같은 기업들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좋은 일자리는 확 늘어났을 거고, 세수 걱정은 안 해도 됐을 게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잘나가는 그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돌파구의 모멘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해답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시작은 기업 구조조정이어야 한다. 기업 활력을 되찾을 최소한의 요건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이야 두말할 나위 없다. 좀비 기업을 털어내야 새 기업이 나오고 유망 기업이 성장한다. 물론 쉬운 건 아니다. 어느 기업이 얼마나 부실한지, 정말 회생 불가능한지 등을 가늠하기 어렵다.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만만찮다. 그렇더라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전철은 피해야겠기에 하는 얘기다. 구조조정 없이 내수 진작의 미봉책에 매달린 게 장기 불황의 주요 원인이었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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