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5-6-15
한국 최고 병원에서 일어났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삼성서울병원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14일 삼성서울병원 의사로선 두 번째로 메르스 판정을 받은 138번 환자는 격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채 줄곧 외래 환자를 진료해왔다. 응급실 이송 요원인 137번 환자도 2일부터 메르스 증상을 보였으나 10일까지 9일간 정상 근무하며 최소한 76명을 이송했다. 이런 허술한 관리로 인해 삼성서울병원을 통해 감염된 환자는 경기 부천·시흥·용인, 대전, 충북 옥천, 부산, 경북 포항, 경남 창원, 전북 김제·전주, 전남 보성, 강원 원주 등 전국 곳곳에 퍼져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14일에야 뒤늦게 '24일까지 병원을 부분 폐쇄하며, 신규 외래·입원 환자를 받지 않고, 응급 상황을 빼곤 수술도 중단한다'고 밝혔다.
웬만한 병원에선 일반 폐렴 환자도 마스크를 쓰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는 와중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은 14번 수퍼 전파자는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채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바이러스를 뿌렸다. 삼성서울병원은 14번 환자가 오기 1주일 전인 지난달 20일 국내 최초로 1번 환자를 확진하는 공(功)을 세웠다. 그러고도 메르스 감염자가 추가로 병원에 올 것에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병원 측은 이달 7일에야 응급실에 온 환자·보호자 675명과 의료진 218명 등 893명을 격리·관찰 대상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12일까지 삼성서울병원 관련 확진 판정을 받은 60명 가운데 25명이 그 명단에 들어 있지 않던 사람들이다. 병원이 '바이러스 노출 대상'을 2m 이내 밀접 접촉자만으로 좁게 설정한 탓이다.
137번 이송 요원 경우 환자들을 휠체어 등에 태워 병원 내 곳곳의 검사실·병실로 옮겼다고 한다. 병원 어느 한구석도 안전하다고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그 이송 요원이 활동한 9일 동안 외래 환자만 따져도 7만 명이 넘는 사람이 감염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병원장이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을 지냈고, 아시아태평양 감염연구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도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서는 무슨 성역(聖域)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2일 "메르스 발생 병원에 대해선 병원 또는 병동 자체를 격리하겠다"고 했다. 실제 서울 메디힐병원, 대전 건양대병원·대청병원은 병원·병동이 봉쇄 또는 격리됐다. 그러나 방역 당국은 삼성서울병원만은 병원 자체의 조치에 맡겼다. 2일 삼성서울병원 의사(35번)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도 이틀 뒤에야 공개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전국 병원들의 이익단체인 대한병원협회에 회비(會費)를 둘째로 많이 내며 막강한 발언권을 갖고 있는 회원이다. 병원협회조차 '국민의 혼란과 불안을 해소시켜야 한다'며 삼성을 포함한 메르스 병원 명단을 공개하려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복지부가 이를 막았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당국은 즉각 전문 인력을 투입해 병원을 장악한 후 역학 조사를 하고, 외래 환자와 면회객을 제한하고, 감염·전파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격리해야 한다. 그러나 방역 당국은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선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로 방치해뒀다. 이런 식이니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이라는 인물은 국회에 나와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병원이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삼성그룹은 2011년 그룹 전략기획실 출신 경영혁신 전문가를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 사장으로 임명하고 삼성물산·제일기획·삼성SDS 등에서 차출한 전문 경영인들을 대거 병원 경영진 상층부에 포진시켰다. 그해 12월엔 '다 잘하려면 잘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치과진료부를 구조조정했다. 이들은 의사 1인당 매출액과 이익률을 점검하며 효율과 수익을 앞세우는 삼성식(式) 경영을 추구했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사태에서 바이러스 오염 지대를 폐쇄하거나 감염 의심자를 선제적으로 격리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격리 대상 인원을 최소화하면서 메르스 오염 사실을 축소하려 한 것은 공공 보건보다는 수익(收益)과 효율을 더 중시하는 경영 풍토가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경영 마인드가 지금 국민 안전, 국민 생명을 위협하게 됐고 국가 의료 시스템을 뒤흔들어 놨다. 삼성은 삼성서울병원으로 인해 악화된 메르스 사태를 종식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그룹 차원에서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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