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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수의 영하 65도 야쿠티야 이야기-2 신이 내린 영물 '순록'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에벤족은 누구인가?

바람아님 2015. 6. 26. 12:02

(출처-조선일보 2015.04.24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에벤족은 과거 퉁구스족이라 불렸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원주민 중 하나이다. 
퉁구스어족이 시베리아 중심부에 등장한 것은 AD 1000년경이다. 그전에 이곳은 유카기르인들의 땅이었다. 
그들을 더 북쪽으로 밀어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순록 치기를 생업으로 선택하고 원주민이 되었다. 
그 뒤 13세기경부터 투르크어족이 밀려왔다.

그들에게 중심부를 내어 주었다. 새로운 이주민들은 말과 소의 목축을 생업으로 하고 평야 지대에 정착하였다. 
에벤족 일부는 이주민과 섞였다. 여기서 새로운 민족이 생겨났다. 이들이 현재의 야쿠트인이다. 
이민족과 동화를 거부한 에벤족은 산악 지역으로 들어갔다. 
시베리아의 산악지역에는 순록이 가장 좋아하는 “선”(이끼)라는 풀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퉁구스 북방계 얼굴형./해냄 출판사 제공
퉁구스 북방계 얼굴형./해냄 출판사 제공
순록은 매우 순하며 참을성이 많다. 시베리아의 겨울 혹한에도 잘 견딘다. 
순록은 영하 60도의 겨울에도 밖에서 서서 잔다. 순록의 가죽은 최선의 방한복을 제공한다. 
순록 발목 털가죽으로 만든 겨울 구두 "운티“는 영하 60도에서도 견딜 수 있는 최상의 방한화이다. 
순록 가죽으로 만든 털모자, 외투, 장갑은 최고의 방한복이다. 
순록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골수는 보양식이다. 순록 혀는 더 이상 부드러운 것을 찾을 수 없는 진미이다. 
순록 우유와 내장의 기름을 섞어 이것을 창자에 넣어 끓이면 ”케벨“이라고 하는 순대 요리가 된다. 
뼈 조각들은 여러 가지 용도의 도구로 쓰인다. 작은 조각들은 장식품이나 애들 장난감으로 만들어진다. 
녹용은 추운 지방의 순록에서 나는 것이 최상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순록 뿔을 자르면 그 고통이 크고 심지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뿔을 잘라 약용으로 쓰는 것은 하지 않는다. 순록은 에벤족에게 짐승이 아니라 바로 식구였다.

순록과 에벤족 순록 치기의 관계가 궁금했다. 유목지를 누가 선택하는지 물었다. 순록 스스로 한다고 했다. 
순록 치기는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먹을 것도 주고 마실 것도 주고 입을 것도 주었다. 
그래서 에벤족은 순록을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여겼다.

순록이 주인인가? 사람이 주인인가? 이방인의 눈에는 구분이 안 되었다. 
어느 곳에 이끼가 많은지, 어디로 유목을 갈 건지는 순록이 결정한다. 
사람은 순록이 멈추는 곳에 ”발라칸“이라고 하는 텐트를 치면 잘 곳이 만들어진다. 
순록은 이끼를 다 먹어치우지 않는다. 끝 부분만 먹는다. 방금 돋아난 싹만 먹는다.

그래서 열흘 이상 한곳에 머무를 수 없다. 
싹을 다 먹으면 순록은 떠난다. 사람들은 가재도구를 챙겨서 순록 뒤를 쫓아간다. 
이끼를 다 먹어치우지 않는 것은 순록이 얼마나 영리한 영물인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래서 시베리아에선 먹이용 풀이 떨어지지 않는다.
에벤족에게 순록은 모든 것이다. 에벤족은 순록을 하늘이 주신 영물로 여긴다. 지금도 눈 덮힌 광야에서 순록을 따라 유목한다. 강덕수
에벤족에게 순록은 모든 것이다. 에벤족은 순록을 하늘이 주신 영물로 여긴다. 
지금도 눈 덮힌 광야에서 순록을 따라 유목한다. 강덕수

순록과 비교되는 동물은 몽골의 염소이다. 염소는 풀을 밑동까지 다 캐어 먹는다. 
염소떼가 지나고 나면 그 지역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막이 된다. 
오늘날 몽골 지역은 영토의 상당 부분이 사막이 되어 가고 있다. 
12세기 칭기즈칸 시대에는 숲이 우거진 울창한 지역이었다. 몽골이 황폐화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염소 방목이다. 
이에 비해 순록은 싹만 먹고, 대신 거름을 듬뿍 주고 간다. 다음 해엔 더 많은 이끼 선이 자라 있다. 
시베리아에서 순록의 먹이가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순록이 있는 한 에벤족의 미래는 영원할 것이다. 
순록은 에벤족에게 신이 내린 영물임이 틀림없다. 
순록과 함께 이끼 선이 자라는 곳을 찾아 유목 생활을 한 지 1000년이 되었다. 
그래서 순록 없는 에벤은 에벤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