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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수의 영하 65도 야쿠티야 이야기-1] 곰 사냥하면 그날 먹고 혼을 달래는 원주민 에벤족

바람아님 2015. 6. 20. 08:55

(출처-조선일보 2015.04.17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한국어가 퉁구스어인가?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선 퉁구스인 생활에 들어가 보아야 한다. 
퉁구스어를 직접 공부하여 한국어와 비교해 보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그들의 문화와 풍습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마침 야쿠츠크에서 800km 북동쪽에 있는 곳에서 에벤족 순록 축제가 열렸다. 
“토폴리노예” 마을이다. ‘백양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2010년 이곳은 에벤족 부락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을 가는 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800km 중 절반은 험준한 산길로 눈이 쌓여 있다. 도시에 사는 야쿠트들은 너무 위험하다고 강력히 말렸다. 
그래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바르바라 그리고리예브나 에벤어 교수가 동행하였다. 오호츠크해 연안 출신 에벤족 할머니이다.

버스에서 에벤족과 언어에 대한 많은 설명을 들었다. 
사라져가는 언어와 문화를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노력이 엿보였다. 
도중 한드가라는 곳에서 숙박하였다. 민박집이었다. 
시베리아 한적한 마을에 개인 민박집이 있다는 게 신기하였다. 
오히려 호텔보다 깨끗하였다. 저녁은 근처 슈퍼에서 사다가 해 먹으면 되었다. 
편안한 친척집에 온 분위기였다. 안주인은 에벤족 여자였다. 
에벤족 사람들은 야쿠츠크시를 오갈 때 비싸고 불친절한 호텔보다 이런 자기들끼리의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민박집을 
이용하였다. 진짜 인간적 자본주의를 경험하였다. 
이런 시골에서 개인 민박집을 허용할 정도로 러시아가 변해 있다는 것도 새삼 놀라웠다. 
하룻밤에 1300루블, 우리 돈으로 3만원 정도였다.

다음 날 한드가의 시청을 찾아가 교육장을 만났다, 
한국에서 온 교수라고 반겨 주며 우리가 가는 곳 토폴리노예의 가을 풍경 사진 액자를 선물로 주었다. 
사하공화국에서 야쿠트인은 다수 중심 민족이다. 
이에 비해 에벤족은 야쿠트인의 40분의 1에 불과한 소수민족이다. 1만 명 정도이다.

이들이 그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소비에트 시절부터 시행되어온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 정책 덕분이었다. 
소비에트 시절 소수민족은 우대를 받았다. 군대도 가지 않았다. 대학 입학에서도 혜택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세금 면제 등의 혜택으로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많은 것이 변하였다. 특히 경제적인 지원이 없어졌다. 
소프호즈(집단농장)은 소수 민족에게 보호막이었다.

모든 것은 소프호즈가 해결해 주었다. 
대기업처럼 조직된 소프호즈는 조직원인 소수민족들에게 월급을 주고 복지를 보장해 주었다. 
에벤족이 속한 소프호즈도 마찬가지였다. 에벤족은 순록 치기만 잘하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변화가 덮쳤다. 소프호즈의 해체는 예상도 못 하였다. 
갑작스런 소프호즈의 해체는 현실이 되었다. 
이것은 소수 민족에게 경제적 자립을 요구하는 조치였다. 
이윤을 스스로 창출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윤이란 게 무엇인가? 
순록 치기로 수백년을 살아온 에벤족은 이윤을 만들기 위해 순록을 길러 온 건 아니었다. 
순록은 그들에게 운명과 같은 것이고, 하늘이 내려준 숙명이었다. 
이들에게 지난 20년은 생존이냐 동화냐를 선택해야 하는 고난의 시기였다. 
토폴리노예에 가는 도중 한드가 시에서 이미 변화의 문턱에서 고통받는 소수 민족의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었다.
에벤족에게 순록은 생명이다. 강덕수
에벤족에게 순록은 생명이다. 강덕수

한드가는 본래 러시아인의 도시였다. 부근에 큰 탄광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 안에 지질학 전문대학도 있다. 지금은 러시아인이 대부분 떠나고 그 자리를 야쿠트인들이 대신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민족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50m 거리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다. 
그만큼 이곳에도 중앙아시아 출신 이슬람교도가 많이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야채, 과일 상권을 장악한 중앙아시아인들이 여기까지 진출한 것이다.

한드가를 정오 쯤 떠났다. 토폴리노예에 당도한 시각은 거의 자정이었다. 
한드가에서 토폴리노예까지는 350km. 그만큼 험난한 산길이었다. 
도시의 야쿠트 사람들이 말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산을 넘으면 또 산. 
에벤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저 산을 넘으면 돼요’라고 한단다. 그런데 또 산이 나온다. 가도 산이다. 
산을 십여 개 지나니 가장 높은 봉우리에 이르렀다. 산 중턱에 산양 조각상이 있었다. 
지나는 차들은 모두 서야 한다.

산양 조각상 아래에 동전, 빵조각, 담배 등을 갖다 바쳐야 한다. 자연의 주인을 숭배하는 의식이다. 
샤머니즘 이전부터 내려온 믿음이다. 이것은 시베리아 민족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에벤족은 샤머니즘을 거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적일 뿐이다. 
그들 의식의 바탕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아직도 굳건하다. 
그 중의 하나가 곰에 대한 숭배의식이다. 그들은 가끔 곰 사냥에 나갔다.

곰을 잡은 사냥꾼은 죽은 곰에게 경건하게 예의를 차려야 했다. 
곰은 사냥꾼의 처지를 생각해서 자발적으로 온 것이었다. 
그런 곰의 선의를 먼저 감사해야 하는 것이었다. 곰을 잡은 에벤족은 마을 잔치를 열어야 했다. 
곰 고기는 다 함께 그날로 다 먹어야 했다. 곰뼈는 원래의 형태로 조립하여 정돈한 다음 관에 넣고 매장하였다.
50년대까지도 곰뼈관을 작은 나무 꼭대기에 올려놓고 숭배하는 고대 의식이 남아 있었다.

자정에 빈 집에 여장을 풀었다. 순록 유목민의 천막집이 아니었다. 2층 아파트였다. 
실내에는 목욕탕,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난방도 중앙 공급식이었다. 따뜻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에서 쇳내가 났다. 
그러나 시베리아 벽촌에서 따뜻한 수돗물에 샤워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한드가에서 이곳까지 산길을 오느라 쌓인 피로와 긴장감을 씻어내기에 충분하였다.

이 마을이 세워진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소비에트 시대에 있었던 소수민족에 대한 우대 정책 덕분이었다. 
집안은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벽장을 열어 보았다. 헌책들이 쌓여 있다. 
1980년의 어느 날짜가 찍힌 소비에트 시대의 잡지가 나온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었다.

주인은 다른 곳에 자기 소유의 단독집을 따로 짓고 나갔다. 
냉장고와 찬장엔 주인이 남기고 간 커피와 차가 있었다. 컵, 접시, 냄비 같은 것들이 그대로 있었다. 
벽난로도 설치되어 있었다. 벽난로 밑에는 잘 쪼개놓은 장작이 있었다. 
집안은 따뜻했지만, 한껏 분위기를 돋우고 싶었다.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이니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아파트에는 순록 축제를 정보로 만들기 위해 같이 온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 둘이 더 있었다.
영하 65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속에서도 이동 가능한 순록썰매. 강덕수
영하 65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속에서도 이동 가능한 순록썰매. 강덕수
바르바라 교수 며느리가 저녁 식사로 순록 기름에 볶은 밥을 해 주었다. 
며느리는 40대 중반으로 보였다. 피부색이 희었다. 피부색이 흰 것은 에벤족의 특성이다. 
이 점이 야쿠트인과 구별되는 겉모습 중 하나이다. 얼굴 모습은 오히려 한국인과 더 닮아 보였다. 
이들은 과거 발해국의 백성이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발해 시대에 고구려인과 이들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했을까? 
어느 시점에 이들이 헤어졌을까?

에벤어에선 한국어와 유사한 특성들이 꽤 발견된다. 
예를 들면, 집은 ‘쥬’, 물은 ‘무’, 옷은 ‘오이’이다. 
부사어 ‘위’는 에벤어로 ‘위’이다. 
‘위에서’는 ‘위기치’, ‘위로’는 ‘위레’이다. 
치아를 가리키는 이는 ‘잇’이다.

모든 동사의 기본형 어미는 ‘-다이’ 또는 ‘-데이’로 끝난다. 
우리말의 조사 ‘도’는 에벤어로 ‘다’이다. 
이렇게 추적해 가다 보면 무언가 고구마 줄기 같은 게 자꾸 나올 것 같다. 
이 고구마 줄기를 당기다 보면 그 옛날 만주 어딘가에서 서로 이웃해 살던 그 시대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벽난로에 장작을 더 넣으며 밤이 길게 느껴졌다. 
에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어졌다.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E-mail :
kangds@hufs.ac.kr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러시아 사하공화국 
북동연방대학교 명예교수. 러시아 사하공화국 아카데미 명예회원. 
러시아 연방 푸시킨 메달(훈장)을 받았다. 

주요저서로 러시아어사, 한-러 사전, 
야쿠티야: 맘모스와 다이아몬드와 착한 사람들의 나라, 
야쿠트 영웅설화 "엘레스 보오투르"(번역)가 있고 
현재 러시아 연방 사하(야쿠티야)공화국 북동연방대학교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