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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모로의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1876)는 낯선 긴장감과 장식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보석 같은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소설가 위스망스는 “퇴폐적인 냄새”가 난다고 했다. 춤이 끝날 때쯤이면, 흐트러진 살로메의 옷 사이로 배어 나온 처녀의 향긋한 땀냄새가 여기 섞이리라.
그림은 마태복음 14장 6~11절에 기록된 세례 요한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로마의 왕 헤롯의 생일. 형수와 결혼해 의붓딸이 된 조카딸 살로메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춤을 청한다. 춤이 끝나고 살로메가 요구한 것은 세례 요한의 목. 이에 헤롯왕은 갇혀있던 세례 요한을 참수하여 그 목을 은쟁반에 담아 살로메에게 준다. 복음서에 전하는 이 짧은 이야기는 19세기 말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살로메의 위험한 ‘사랑’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모로(Gustave Moreau·1826~1898)는 1876년경 살로메를 테마로 한 매혹적인 작품을 여러 점 그렸다. 프랑스 소설가 위스망스는 자신의 소설 『거꾸로』(1884)에서 구스타프 모로의 이 그림들을 예찬했다. 그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살로메를 지극히 아름답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것,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짐승” 같은 여인이라고 묘사했다. 이로써 남자를 파멸시키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인, 팜므 파탈(femme fatal)이 본격적으로 문화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는 위스망스의 소설과 구스타프 모로의 그림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희곡 『살로메』(1892)는 더욱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살로메는 하필이면 세례 요한의 목을 원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오스카 와일드의 답은 너무나 엉뚱하고 매혹적이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제출한 답은 “사랑했기 때문”이다.
살로메는 세례 요한을 사랑했다. 그러나 유대의 예언자 세례 요한은 적국(敵國), 로마의 공주 살로메를 사랑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세례 요한을 가질 수 없었던 그녀는 죽은 세례 요한의 목이라도 갖고자 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생각한 현대적 사랑의 속성 자체가 그러했다. 오스카 와일드에게 있어서 보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극에서 모든 문제는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극중에서 의붓딸에 대한 흑심을 숨기지 못하는 헤롯왕은 살로메를 끊임없이 쳐다본다. 살로메의 치명적인 유혹의 춤을 본 헤롯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세례 요한의 목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달빛처럼 창백하고 “금색 칠한 눈꺼풀 밑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살로메 역시 세례 요한을 갈망하며 바라본다. 마침내 세례 요한의 목을 얻은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탄식한다. “아! 요한 어이해서 그대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는가? 나를 제대로 보았더라면 분명 사랑에 빠졌을 텐데.”
팜므 파탈이 등장한 19세기 말은 시각중심의 근대사회의 기본틀이 형성되던 시대였다. 물건은 쇼윈도에 진열됨으로써 유혹적인 상품이 되었다. 외모지상주의(lookism)을 비판하지만, 사람이 가진 매력적인 외모도 자본의 하나로 인정됐다. 모든 것을 보고, 보면 갖고 싶어지는 시대에는 사랑 역시 소유의 문제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보는 것은 무한하지만, 소유는 유한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가질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에 익사시키는 팜므 파탈이 되어갔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이 대대적인 성공을 하게 되면서 미술사에는 수없이 많은 ‘살로메’가 그려졌다. 더불어 유디트, 릴리트, 스핑크스 같은, 남자를 고통에 빠뜨린 모든 신화 속 악녀들이 팜므 파탈의 대열에 합류했다. 현실의 여성들도 기꺼이 매혹적인 팜므 파탈이 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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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화가 발렌틴 세로프는 발레리나 이다 루빈쉬타인의 좀 특이한 누드 초상화를 그렸다. 1909년 그녀는 살로메 역으로 데뷔 했다. 이 공연에서 그녀는 오스카 와일드가 ‘일곱 베일의 춤’이라는 야릇한 제목을 붙인 춤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대로, 일곱 번째 베일이 마지막으로 벗겨지고 그녀는 무대 위에서 알몸이 되어 춤을 췄다.
그녀의 초상화는 침대 위에 아름다운 여인이 누드로 등장하는 ‘침대 위의 비너스’라는 유혹적인 도상에 기대고 있다. 기존의 고전적인 미인들이 풍만하고 부드러운 몸을 가지고 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찔릴 것 같은 각이 진 바싹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창백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현대적인(modern)’ 유혹의 표정이다. 발 근처의 초록색 스카프는 꿈틀거리는 뱀을 연상시킨다. 뱀과 여자의 만남은 유혹과 파멸을 의미한다. 그 옛날 에덴 동산에서 인류 최초의 여자 이브와 뱀은 만나 남자를 타락시켰다.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자유분방한 사생활로 그녀는 실제 삶에서도 거침없는 팜므 파탈이었다.
모로가 환상 속의 팜므 파탈 살로메를 보석 같은 섬세함으로 그렸던 것과는 달리 세로프는 현실의 팜므 파탈 이다 루빈쉬타인을 냉정하고 건조하게 그렸다.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불러낸 것은 남성들이었지만, 정작 여자들이 그렇게 되고자 했을 때는, 그 불편한 심사를 감추기 힘들었던 것이다.
팜므 파탈은 기존질서를 거부한 탐미주의자들의 고안품이자 현대 여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타락한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되었다. 팜므 파탈들은 타락한 현실 속에서 “무력증에 빠진 남성들의 감각들을 한결 강렬하게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팜므 파탈은 동시에 남자들과 동등한 참정권을 요구하는 강한 여성들, 당시 만연한 매춘 사업에서 매독균의 보균자로 낙인 찍힌 위험한 여성들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했다.
팜므 파탈의 이미지는 이후에도 대성공을 거두었고, 광고와 대중문화에도 스며들었다. 여성 참정권이 당연시되고, 매독의 공포에서 벗어난 21세기에 팜므 파탈은 애초의 저항성과 위험성을 상실한 채 그저 매력적인 여성의 다른 말이 되었다. 팜므 파탈의 문화적인 변종인, ‘얼굴은 예쁘고, 성격은 까칠한’ ‘나쁜 여자’들은 착한 여자들보다 여전히 주가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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