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이진숙의 접속!]나보다 허기진 누군가에게 내민 따뜻한 감자 한 알

바람아님 2015. 7. 15. 09:31

이진숙의 접속! 미술과 문학 <8> 신경숙과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중앙SUNDAY | 제414호 | 20150215 입력

 

 

 빈센트 반 고흐, ‘감자를 캐는 농민 여인’(1885)

부친은 변했다. 말 수도 적고 감정 표현도 적었던 아버지가 자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 아버지를 위로하는 방법은 아무도 몰랐다. 한때 잘생기고 건장한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이제 노인이 되어, 뇌수 속을 떠다니는 조그만 석회질 조각 때문에 기억과 삶의 기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내와 자식들. 병원 창 밖의 가을 그 쇠락의 한가운데서 “병약한 근친이 풍기는 이 초라하고 가련한 냄새”를 맡으며, 신경숙의 소설 『감자 먹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삶이 가져다주는 것 중엔 우리가 물리쳐볼 수 없는 절대의 상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주인공은 “그 절대의 상실 앞에선 무얼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에 대한 답처럼 나온 이야기가 유순이와의 만남에 관한 것이었다. 20여 년 만에 걸려온 유순이의 전화. 기억을 더듬으며 통화를 하던 주인공은 이상하게도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복제본을 쳐다”보게 된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빈센트 반 고흐가 아직 인상주의 밝은 색채의 세례를 받기 이전 그림이라 다소간 어눌하고 어둡게 그려졌다. 그러나 그림에 담고자 하는 내용은 고귀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소박한 저녁 식사의 의미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실제 상황을 그린 고흐

 


고흐는 실제로 대단한 독서가였지만, 그는 삶을 글로 배우지 않았다. 사실 고흐 같은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은 없다. 그림도 거의 독학을 했고, 모든 것을 삶으로부터 배웠고, 진실된 삶을 사랑했다. 농민들은 고흐가 생각하는 진실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고, 밀레를 ‘농민의 화가’라고 부르며 추앙했다. 고흐는 당시에는 유행하던 아카데미 풍의 농촌 그림이 진실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짜 평범한 시골 농부들을 만나서 그들을 관찰하고 그렸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감자 먹는 사람들’의 어색함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었다. 고흐의 것은 그림·드라마·영화·연극에서 흔하게 연출되는 밥상머리 장면의 상투성에서 벗어나 있다. 실제로 두 식구도 함께 밥 먹기 힘든 것이 현실인데, 극중에는 대부분 늘 온 식구가 함께 밥을 먹는다. 그러면서 해야 될 이야기, 안 해도 될 이야기가 섞여 나오면서 갈등이 고조된다. 그 밥상머리 장면의 공통점은 밥상의 네 면 중 한 면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곳은 바로 화가·감독·관람객·시청자·카메라의 자리다.

그러나 1885년의 고흐는 실제의 삶, 삶의 진실만을 염두에 두었다. 다섯 식구가 정말로 다정하게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모습을 그렸다. 그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한가운데 있는 조명 때문에, 가운데 있는 소녀는 역광에 놓인 상태가 되었다. 결국 가장 밝아야 할 그림의 한가운데가 가장 어둡게 되었다. 이런 결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흐는 이 그림을 반드시 “황금색, 혹은 곡물 색 벽지 위에 걸어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도 고흐는 후에는 이 그림은 ‘진정한 농촌 그림’으로 인정받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1885)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 담긴 고흐 작품

 


소설의 주인공은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 끌렸던 까닭을 생각해본다. “비참에 억눌릴 만도 한데,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또 “노동에 단련된 굵은 손으로 덥석 집어먹고 있는 게 그저 삶아 그릇에 담아 내놓은 순수한 알감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가을의 덕수궁에서 만난 유순이. 유순이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내 준다. “삶은 감자를 건네 준 나, 다락에 잠을 재워준 나, 거지라고 놀려 대는 마을 아이들 속에서 유일하게 제 편이 되어준 나”,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끄집어내 준다. 그런 일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주인공의 기억 속에서 유순이는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등이 짓무르도록 아이를 업고 있었던” “금촌댁네에서 아기 보던 여자애”였다. 결국 나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은 ‘나’가 아니라, ‘너’였던 것 아닐까?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서로에 대한 기억이 결국 ‘나’가 아닐까?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면서 유순은 아이가 소아당뇨를 앓고 있다고 무심히 말한다. 상실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절대의 상실”은 절대적으로 보편적이었다. 서간체 형식으로 쓰인 소설에서 편지를 받는 사람으로 설정된 윤희라는 여인 역시 1년 전 위암으로 남편을 잃었다. 한 술자리에서 만난 중년남자는 술에 취해 어려서 죽은 딸, ‘달님’이를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20여 년 만에 나타난 친구 유순이의 아이는 소아당뇨로 생사의 고비를 오가고 있다.

“내가 이미 누군가의 존재를 잊었듯이, 나의 존재를 기억할 나의 증인들도 사라지겠죠. 나의 아버지를 시작으로 해서 이제 나는 끝도 없이 나의 증인들을 잃어갈 것입니다.”

캐도 캐도 나오는 감자처럼 이어지는 삶

 


병원 근처를 산책하던 아버지와 주인공은 고구마 캐는 아주머니를 만난다. 둘은 회상에 잠긴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던 시절, 고구마나 감자는 비가 온 다음에 캐면 쑥쑥 뽑혀 나왔다. “캐도 캐도 나오고 또 나오는” 구근식물의 생명력은 하나의 해답이 되었다.

“캐도 캐도 나오고 또 나오는” 감자 같이 삶은 이어진다. “나의 증인들은 사라지고 다른 한 편에서 나의 증인들은 태어나”며, 삶은 “끝없는 순환”을 이룬다. 우리는 모두 그런 순환의 고리 속에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근친들에게 ‘살아있어만 달라’는 외침이 소설 도처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서로가 있음으로 해서 “생의 갑옷은 철갑옷”이 된다. 무명가수인 주인공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언제나 예술은 상실과 죽음에서 시작됐다.

주인공은 다시 질문한다. 그러면 “한 사람의 일생으로부터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고흐가 답을 할 차례다. 고흐는 이 그림의 핵심이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이었고 말했다. 삶은 다만 거친 밭일 끝내고 돌아온 허기짐 앞에서 나보다 더 배고플 누군가에게 따뜻한 감자를 한 알 권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유순은 주인공도 기억 못하는 어린 날의 추억을 한 대목 이야기한다. 천덕꾸러기 유순이가 서울로 올라가던 날, 주인공은 색동 코가 달린 고무신을 벗어주었다. 나는 잊어버린 그 기억을 가지고 유순이는 평생을 살았다. 아마도 색동 코가 달린 고무신이 유순이에게는 따뜻한 감자 한 알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누군가에게 저렇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작은 감자 한 알을 권해 본 적이 있는가.


이진숙 문학과 미술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각 시대의 문화사 속 인간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위대한 미술책』『미술의 빅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