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이우환 화백의 위작, 150점 이상 국내외서 유통

바람아님 2015. 7. 14. 09:04

경향신문 2015-7-13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우환 화백(79·사진)의 위작이 국내외에서 유통돼 미술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스위스 아트바젤을 비롯한 해외 미술시장에서 위작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최근 경찰도 수사에 나서 결과가 주목된다. 한국미술의 위상 추락을 막기 위해 공개적으로 작품 감정을 실시해 위작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13일 미술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화백의 1970년대 후반 작품 ‘점으로부터(From Point)’와 ‘선으로부터(From Line)’ 시리즈를 중심으로 최소 150점이 넘는 위작이 최근 1~2년 사이 국내외 시장에서 유통된 것으로 추산된다. 한 화랑 대표는 “한 조직이 120여점을 위조해 그중 70여점이 유통됐다고 알려졌는데, 그 외에 2개 이상의 위조 조직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에서 위작이 돈다는 소문이 나자 최근에는 해외에서 주로 거래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화랑 대표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지난 3~6월에 열린 베이징 아트페어, 아트바젤에서 위작으로 보이는 그림을 봤다”며 “일본 화랑이 출품한 작품으로 한눈에도 조잡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단색화 열풍을 타고 해외에서 한국 작품 가격이 오르고 인기도 높은 상황에서 이우환 화백의 위작이 유통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찰 수사도 이 화백 위작 유통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이 화백의 작품을 위조해 국내외에 유통한 혐의로 위조 전문가, 화랑 관계자 등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경매에서 위작을 판매한 뒤 구매자가 작품의 진위를 물어오면 가짜 진품 감정증명서 등을 발급해 주는 방법으로 100억원대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핵심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역시 이미 20여건의 감정을 실시했고, 그중 상당수가 위작으로 드러났다. 감정에 참여한 전문가는 “과학감정이 필요하겠지만 육안으로만 봐도 동일인(이 화백)의 그림이라고 보이지 않는 작품이 여러 점 있었다”고 말했다. 평가원은 이 같은 사실을 지난해 이 화백에게 통보하고 적극 대처를 주문했다.

 

위조 작품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이우환 화백의 인기작 ‘점으로부터’(1976·위)와 ‘선으로부터’(1977).

하지만 이 화백은 아직까지 “내 작품은 위작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화백은 지난해 프랑스 베르사유궁 초대전을 앞두고 가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도 그런 소문들이 돌아서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과 신옥진 부산공간화랑 대표에게 부탁해 시중에 유통되는 작품들을 수거하고 세 차례 모여 검토해 봤다. 정말 한 점도 가짜가 없었다. 내 작품은 내 고유의 호흡으로 그리기에 모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미술 관계자들은 이런 이 화백의 확언이 위작 유통을 더욱 부추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집계 결과, 이 화백의 ‘선으로부터’(162×130㎝, 1975)는 그해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18억원에 낙찰돼 미 작가 제프 쿤스에 이어 국내 경매낙찰가 2위를 차지했다. 낙찰총액 87억6300만원(72건)으로는 김환기에 이어 2위였으며, 평균 호당가격은 948만원으로 생존작가로는 유일하게 상위 10위권에 들었다. 그러나 위작 논란, 단색화 열풍 등으로 올 상반기에는 김환기에 이은 2위 자리를 박서보에게 내주고 3위(47억8300만원)로 떨어졌다.

 

미술계에서는 경찰 수사결과를 기다리는 대신 미술계가 직접 나서 위작을 가려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명윤 명지대 교수는 “위작 소장자들이 재산상 손실을 우려해 시간이 지나면 덮일 것으로 보고 작품을 내놓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미래에는 더욱 확실히 진위가 가려지게 될 것”이라며 “이 화백의 작품 연구성과가 충분히 쌓여 있어 소장자들이 협조한다면 위작 여부를 가리고 배상 방안도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화백 측근들은 작가 자신이 위작 적발 의사를 밝히면 자정 작용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고 작가를 설득하고 있다. 지난 4월 부산시립미술관 내 ‘이우환 공간’을 개관한 이 화백은 17일 이곳에서 ‘예술가란 무엇인가’란 특별강좌를 열 예정이다. 이 화백은 1956년 서울대 미대 재학 중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오브제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모노하(物波)를 창시하면서 세계적 거장으로 떠올랐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며, 2013년에는 문화예술가로서는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윤정 선임기자 yjh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