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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극우 산케이의 도발, 차라리 무시하자

바람아님 2015. 9. 3. 09:18

[중앙일보] 입력 2015.09.03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정헌/도쿄 특파원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또 화가 난다. 애써 무시하며 지내왔지만 참기가 어렵다. 일본의 극우 성향 매체인 산케이신문 얘기다. 일본 내 혐한(嫌韓)·반한(反韓) 여론을 주도하며 끊임없이 한국을 자극하더니 대형 사고를 쳤다. 지난달 31일 온라인판 뉴스에서 산케이 정치부 전문위원은 “미국·중국 양다리, 한국이 끊을 수 없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란 칼럼을 통해 망언을 쏟아냈다. 한국의 외교사를 주체성 없이 강한 나라에 의존하는 ‘사대주의’로 평가절하했다. 역사 왜곡을 넘어 한국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도발이다. 그것도 모자라 박근혜 대통령을 일본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에 비유하며 비아냥거렸다. 일본 정부가 시해를 주도했다는 사실은 쏙 뺐다.

 더 큰 문제는 칼럼이 파문을 일으킨 뒤 산케이가 보인 반응이다. 한국 외교부는 1일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산케이 측에 항의의 뜻을 전달하고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산케이 관계자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신문에 나온 것도 아니고 온라인판에 나온 칼럼까지 모두 체크하기는 어렵다”며 “그런 칼럼이 게재돼 한·일 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돼 안타깝다”고 했다. 마치 남 얘기하듯 책임을 부정하는 태도다. 그러면서 “칼럼을 쓴 사람이 그렇게 썼고 언론의 자유도 있는데 그걸 강제적으로 삭제하는 건 어렵다”고 밝혔다. 1년 전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이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칼럼을 써 기소되자 내세웠던 ‘언론의 자유’를 또 꺼내 들었다.

 산케이는 지난해 2월에는 박 대통령의 외교를 ‘고자질 외교’로 폄하하며 ‘한국의 고자질 외교는 민족적 습성 탓?’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4개월 뒤에는 서울 위안부 관련 ‘수요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같은 달 숨을 거둔 배춘희 할머니 영정에 묵념하자 “위안부는 죽어서도 여전히 대일 역사전의 전사로 떠받들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리한 기사와 칼럼으로 끊임없이 한국을 비판하는 산케이는 이미 언론으로서 신뢰를 잃었다.

 이쯤에서 산케이의 전략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한 외교 전문가는 “지금 열 받고 있는 건 한국 정부와 국민들뿐”이라며 산케이는 파문이 커지는 걸 즐기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극우 성향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일본 내 입지를 강화하려는 상업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 외교부가 “터무니없는 기사에 대해 논평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고 비판한 뒤 산케이 측에 기사 삭제를 요구한 건 불필요하게 문제를 키운 판단 착오다. 온전치 못한 상대와 맞서 싸우다 보면 오히려 바보가 된다. 차라리 철저히 무시하자.

이정헌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