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9-4
그렇다고 죽음을 무서워하진 않겠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미국의 저명한 신경의학자 겸 작가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글을 떠올린다. 지난 2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직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나는 충분히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고,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그는 또 “남은 몇 개월을 어떻게 살지는 내게 달렸다. 풍성하고 깊고 생산적으로 살려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느낀다”고 썼다.
지난달 외신에서 읽은 두 죽음이 겹쳐진다. 지중해 연안에서 다이빙 중 돌연 심해로 사라진 다이버 나탈리아 몰차노바, 70대로는 건강한데도 스스로 죽음을 택한 영국 여성 질 패러우다. 53세인 몰차노바는 세계 기록만 41개인 ‘프리다이빙계의 여왕’인데, 납득하기 어려운 실종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프리다이버인 아들은 “어머니는 바다에 계실 것 같다. 그걸 좋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 평생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한 패러우는 환자들의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자신은 절대 “끔찍하게 늙지 않겠다”고 말해 왔다.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로 날아가 가족 앞에서 스스로 선택한 최후를 맞았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장 아메리는 책 『자유죽음』에서 스스로 죽을 때를 결정하는 것이 인간 최고의 자유라고 썼다. 아우슈비츠의 잔혹한 살육을 목격하며 자기 의지와 무관한 무력한 죽음이야말로 인간 존엄에 반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역시 책을 쓴 2년 뒤 ‘자유죽음’을 택했다.
자살에 대한 도발적 주장을 담은 아메리의 경우야 극단적이라 해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삶의 화두임은 분명하다. 죽음을 불가해의 공포나 삶의 대척점이 아닌 삶의 일부이자 완성으로 본 색스 교수의 마지막 글이 요 며칠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이유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고 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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