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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효도를 법으로 강제해야 하는 세태

바람아님 2015. 9. 2. 10:12

[중앙일보] 입력 2015.09.02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형구/정치국제부문 기자

 

#2002년 1월 개봉한 영화 ‘공공의 적’. 어느 날 밤 노부부가 잔인하게 살해된다. 수십억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결심한 노부부를 흉기로 죽인 범인은 아들(이성재 분)이었다. 상속받을 돈을 날리게 되자 ‘공공사회의 적’으로 돌변한 거였다.

 #지난해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올랐던 KBS 2TV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주인공 차순봉(유동근 분)은 세 자녀를 상대로 ‘불효 소송’을 낸다. 병원에 입원해도 찾아오는 자식이 없고, 오히려 자신이 운영하는 두부가게 건물의 명의 이전을 자식들이 요구하자 “스무 살 이후 들어간 모든 양육비를 돌려받겠다”며 송사(訟事)를 벌인 것이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일들이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일상사가 됐다. 자식에게 부양료를 요구하며 낸 ‘불효 소송’ 건수가 2004년 135건에서 2014년 262건으로, 10년 사이에 배가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른바 ‘불효자식방지법’(자식이 부모 부양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넘겨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법무부도 같은 내용의 민법 개정안 시안을 마련했다는 것을 본지가 단독 보도한(8월 31일자 1면) 뒤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상속을 받았으면 당연히 부양도 해야 한다” “노부모에 대해선 법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중국에선 자식이 부모를 평생 부양하는 집이 많은데 안 그러면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법안 도입이 시급하다” 등.

 동양사회의 전통과 미덕이라고 여겼던 ‘효’ 문제가 공론의 장으로 나온 모습이다. “법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반대 의견도 없진 않았다. “자식이 상속을 포기하면 부모를 부양할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는 면죄부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논란을 지켜보는 마음은 심란했다. 효도마저 법으로 강제해야 하는 세태가 씁쓸했다. 하지만 이제는 노부모 봉양을 가족의 울타리(사적 부양) 안에서만 책임지울 일이 아닌 듯싶다. 대가족이 무너지고 핵가족화된 지 이미 오래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부모 부양을 버거워하는 자식이 패륜을 저지르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 노후복지 차원에서 이젠 사회적 부담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아닐까.

 정치권에도 당부하고 싶다. 불효자식방지법을 논의할 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년층을 겨냥한 ‘표 계산’을 하지는 말아 달라고. 법을 한번 바꾸면 재개정이 쉽지 않은 만큼 찬반 논의를 거쳐 정교한 입법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정략으로 접근하기엔 너무 중대한 ‘내 문제, 우리의 문제’라서다.

김형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