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의 <성학집요>는 디테일한 태교법을 일러주고 있다. “옆으로 누워 자지 않고, 비스듬히 앉지 않고, 외발로 서지 않는다. 이상야릇한 맛의 음식도 먹지 않는다. 사특한 빛깔을 보지 않고, 음란한 소리도 듣지 않는다. 그러면 아이는 얼굴이 단정하고 재주가 남보다 뛰어날 것이다.”

특히 만백성의 어버이를 낳고 키워야 하는 왕실의 태교는 어진 임금으로 만들기 위한 ‘초조기 교육’이었다. 임신 3개월부터 거처를 별궁에 옮긴 왕실 여인은 본격적인 태교에 돌입했다. 임금과도 편지로만 연락했다. 눈뜨는 순간부터 옛 성현의 가르침을 새긴 옥판(玉板)을 외워야 했다. 궁중악사들은 거처 주변에서 가야금과 거문고를 연주했다. 피리 소리는 금물이었다. 당직 내시와 상궁·나인들은 밤낮으로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을 낭독했다. 단맛을 특히 경계했다. 당이 분해될 때 칼슘을 빼앗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순두부 등 콩과 채소, 김, 미역, 새우, 생선 등을 먹었다. 옆으로 걷는 게와 뼈 없는 문어 등은 금기음식이었다. 출산이 임박하면 산모의 머리를 길한 방향, 즉 달이 떠오르는 방향으로 두었다. 1766년(영조 42년) 73살 할아버지(영조)가 태교를 하는 이유를 묻자 15살 세손(정조)의 대답이 핵심을 찌른다. “임신 중에 착한 일을 하면, 그 아들이 나서 절로 어진 사람이 됩니다. 태교에 태만할 수 없습니다”(<영조실록>).
아기가 태어난 후 탯줄을 100번이나 씻어 태실에 안장하는 일도 걸러서는 안될 일이었다. “아기가 훗날 현명할지, 어리석을지 모두 탯줄에 달려 있다”(<세종실록>)고 봤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어진 임금의 탄생을 바라는 왕실의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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