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살며 생각하며>화려한 보배와 산다

바람아님 2015. 10. 24. 00:37

 문화일보 2015-10-23

 

한승원 / 소설가

무등산 증심사 대웅전의 부처님 앞에서 한 신부는 하얀 한복 치마저고리에 손수건만 한 하얀 너울 한 장을 얼굴에 쓰고, 신랑의 아버지, 신부의 어머니, 신부의 오빠, 신부의 사촌 동생, 신랑 아버지의 제자 한 사람만 증인으로 세우고, 다른 하객은 한 사람도 없는 가운데, 스님의 주례로, 검은 양복 입은 가난한 신랑과 혼례식을 치르고 아들딸 삼 남매 낳고 살아왔다. 그 신부가 지금의 내 아내인데, 내가 그 아내를 위하여, 결혼 50주년인 2016년 2월의 그날에 그 대웅전의 부처님 앞에서 하얀 달빛 면사포를 씌우고 백합꽃 색깔의 드레스를 입혀 금혼식을 치러주려 하는데, 아내는 그것은 허례허식이라고 절대로 싫다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 아내를 나는 내 늙바탕의 가슴 벅찬 보배라고 생각하며 산다.

터키 여행 중에 슬픈 일 하나가 있었다. 거대한 버섯처럼 생긴 원기둥 흙더미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카파도키아의 한 토굴 카페에 들어가 아내와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갈색 피부에 머리칼 부스스한 늙은 홀아비 주인이 내 아내가 탐난 듯 우리 부부 옆으로 다가와서 토막 영어로 흥정을 하려고 들었다.

'당신의 아내, 낙타 한 마리하고 바꿉시다.'

물론 농담으로 하는 흥정이겠지만, 나는 당황하여 아내의 얼굴을 흘긋 살폈다. 그의 말을 알아들은 아내는 나를 향해 코를 찡긋하며 피식 웃었다. 나는 혹시라도 아내가 불쾌해 하면 어쩔까 하면서, 홀아비 주인 남자에게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했는데, 그가 두 마리하고 바꾸자고 나섰다. 그래도 안 된다고 하자 그는 손가락 셋을 펴들었다, 아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내가 네 마리도 안 된다고 하며 고개를 젓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너털거리면서 생각했다. '백 마리, 아니, 만 마리 하고도 안 바꾸어.'

유쾌하게 웃어버리고 만 일이지만, 나는 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농담으로라도 아내를 흥정했다는 사실이 아내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만일 내가 낙타 세 마리하고 아내를 바꾸었다면 나는 지금 아내 대신 낙타를 타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닌가. 아내는 이국땅에서 그 홀아비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고.

옛날 노름꾼들은 노름판에서 밑천이 떨어지면 자기의 아내를 즉석에서 팔아 그 돈을 걸고 노름을 했다고 들었다. 마작에 넋이 나간 중국 남성들도 아내를 걸어놓고 마작 노름을 한다고 했다. 노름의 결과에 따라 하룻밤 사이에 한 남자의 아내가 이 남자의 것이 되었다가 저 남자의 것이 되었다가 한다고 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내와 나의 사이는 얼마나 멀고 얼마나 가까울까.

아내와 나는 오래전부터 저녁밥을 먹은 뒤 스카이 라이프 여러 채널의 TV 드라마들을 시간순으로 돌려가며 빠짐없이 보는데, 아내는 등장인물 중 누가 누구와 결국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것, 누구의 출생 비밀, 누구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를 분명하게 예측해 버리는 드라마 박사인데, 나는 스트레스 받으며 대충대충 시간 죽이기로 보는 드라마 바보이다.

아내는 째깍거리는 괘종시계를 머리맡에 놓고도 잠을 잘 자지만, 나는 그것을 두꺼운 이불 밑에 깊이 묻어놓아야 잠을 잔다. 아내는 겨울철에 따스한 방에서도 털양말을 신어야 숙면을 하는데 나는 가끔 발을 이불 밖으로 내놓고 식히곤 해야 깊은 잠을 잔다.

아내는 노인당에 다니며 동무들하고 화투놀이를 하고 사탕이나 과일 따위로 주전부리를 하고 깔깔거리며 시간을 보내지만, 나는 토굴에서 책을 읽거나, 고무줄같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시간의 발가지들을 잘라 만든 시구(詩句)나 소설 한두 단락을 끄적거리는 것으로 주전부리를 대신한다.

단둘이 식탁에 마주 앉으면 아내는 마을의 소식들을 시시콜콜 전하며 즐기는데 나는 그것들을 들으면서 즐긴다. 아내는 마을 사람들과 세상 모두에게 속을 트고 오지랖 넓게 사는데 오지랖 비좁은 나는 사람들하고는 닫고 하늘과 바다와 산과 푸나무와 들꽃과 새들과 벌레들하고만 트고 산다. 아내는 몸으로 시를 쓰며 즐기는데 나는 컴퓨터 모니터에 시와 소설을 쓰며 즐긴다.

산수(傘壽)가 내일모레인 나에게는 아내가 화려한 보배일 수밖에 없다. 아내는 자기의 삶이 모두 늙은 남편인 나의 먹을거리와 건강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해야 할 정도이다.

지방의 한 대학 초빙교수로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나가곤 하던 강의를 두 해 전 초가을에 그만두었는데, 그 무렵에는 글마저 잘 써지지 않았다. 속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온,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너울 같은 우울함에 갇혀, 아침나절 내내 달 긷는 집 옆의 달 보는 정자(見月亭·견월정) 난간에 쉼표처럼 걸터앉아서 속절없이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다가 점심때, 식탁 앞에서 어수룩하게 고개 수그리고 아내가 차려 낸 생선회 비빔밥을 포도주 곁들여 먹고 숟가락을 놓자마자 토굴로 올라가려고 몸을 돌리는데, 아내가 "여보, 오늘부터 내가 놀아줄까요?" 하고 말했고, 순간 나는 가슴이 움찔 뜨거워졌다. '아하, 아내에게 들켰다, 내 지친 삭신 굽이굽이에 몸살처럼 알알이 박힌 우울.'

아내는 내 먹을거리만 챙기는 것이 아니고, 밀물과 썰물 같은 내 심사의 변환까지도 챙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