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1.10 팀 알퍼·칼럼니스트)
겨울이 찾아오면 대중목욕탕 생각이 간절해진다.
시베리아에서 온 찬 바람이 부는 한국 겨울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든 목욕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목욕탕이 없는 고향 영국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즐거움이다.
런던에도 간판에 '사우나'라고 쓰인 곳이야 있지만 여기는 성매매 업소거나 범죄조직의 돈세탁 창구다.
반쯤 쓰다 남은 샴푸, 칫솔, 그리고 이태리타월을 들고 맘 편히 찾을 수 있는 한국식 '목욕탕'은
영국에 없다.
일부 서구인들에게 목욕탕은 여전히 낯설다.
일부 서구인들에게 목욕탕은 여전히 낯설다.
몇 년 전 친한 영국 친구가 한국을 찾아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탕에 들어가는 순간 시선에서 그를 놓쳤다.
온탕에 들어가 해물탕 속 새우처럼 잘 익혀지고 있겠거니 했다. 착각이었다.
내가 느긋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친구 녀석은 옷을 모두 차려입고 탈의실 의자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긴 노출이 너무 과해. 어서 돌아가자"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그제서야 영국에서는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의 거시기(?)를 볼 일이 별로 없다는 게 생각났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발가벗고 다니는 민망한 장면에 그는 꽤나 문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에 오기 전 잠시 우크라이나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목욕탕 사랑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영하 30도의 거리를 걷다가 목욕탕에서 몸을 풀면서 그 매력에 빠졌다.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목욕탕·찜질방·사우나가 있다는 걸 듣고 가장 기뻐했다.
한국 목욕탕 문화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때밀이 문화다.
피부 아래 황금이 숨겨져 있고 그걸 캐내려고 저렇게 열심히 살갗을 밀어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더 신기했던 것은 성질 급한 목수가 거친 나무 표면을 사포로 밀어내듯 아이들의 때를 밀어주는 아버지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중년이 된 그 아들이 늙어버린 아버지를 목욕탕에 데려 와 때를 밀어줄 것이다.
이 풍경이야말로 한국 목욕탕에 숨겨진 황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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