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가뭄, 산불, 지진···. 어떤 재해가 가장 큰 걱정거리일까. 뭐니 뭐니 해도 가뭄이다. 피해 지역이 넓고 십중팔구 기근으로 이어진다. 과거에는 특히 그랬다. 그런 까닭에 가뭄이 들면 잔치조차 열지 않고 임금도 기우제를 올렸다. 그렇다고 가뭄이 피해 가는 법이 있던가.
황정(荒政). 왕도정치의 핵심을 이룬다. 기근은 늘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지니.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民以食爲天)’ 백성을 굶주리게 해서야 “정치를 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기근 때에는 환곡을 풀고, 곡식을 실어 날랐다. 모자라면 공명첩을 팔아 부잣집 곳간을 털었다.
영조 때 삼남에 큰 흉년이 찾아들었다. 1762년 이런 하교를 내린다. “호서안집사가 아뢴 것을 보니 주린 백성을 내 눈으로 보는 듯하다. 교제창 곡식 4만석을 호남에, 3만석은 영남에 보내라.” 교제창은 환곡 창고다. 이때 함경도 원산, 고원, 함흥 교제창의 곡식을 삼남으로 대거 실어 날랐다. 곡창지대의 곡식이 바닥을 드러냈으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 곡식은 백성의 손에 제대로 들어갔을까. 숙종 때 팔도에 내린 유시에 참담한 실상의 일단이 드러난다. 화난 숙종 왈, “굶주린 백성 먹일 쌀 한 홉이라도 간사한 아전의 쌀자루를 윤택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수령 중에 재리(財利)를 빙자해 백성의 죽음을 보고만 있는 자가 있다면 내 단연코 그 처자까지 사형에 처하리라.”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가뭄과 기근이 반복되니 포기할 수 없는 이념이었다. 이 구호는 30∼40년 전만 해도 곳곳에 내걸렸다.
풍년이 들었다. 올해 쌀 생산량은 432만7000t. 6년 만에 최대치라고 한다. 풍년가가 울려 퍼져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농촌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온다. 쌀값이 떨어져 생산비에 미치지 못하니 그렇다. 열심히 일해 더 많은 쌀을 소출하면 한숨을 토해야 하는가. 이제 논을 갈아엎어야 하는가.
농자는 더 이상 ‘천하의 대본’이 아닐까. 그럴 리가 있는가. 먹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은 긴축을 요구했다. 긴축 첫머리는 농업보조금 축소. 농산물의 대내외 가격구조를 놓고 보면 식량안보를 포기하라는 요구였다. 식량안보는 지금도 화두다. 풍년에 ‘슬픈 풍년가’를 읊어야 한다면 대본은 흔들리지 않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학여행도 동창회도, 자신을 비우려 그 절에 간다 (0) | 2015.11.26 |
---|---|
[천자칼럼] 거짓말 단계 (0) | 2015.11.25 |
[토요일에 만난 사람]“佛畵에 빠져 100억 쾌척까지… 인연이란 게 참 묘하지” (0) | 2015.11.23 |
[터치! 코리아] 부자가 더 비싼 한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 (0) | 2015.11.22 |
[설왕설래] 위대한 어머니 (0) | 2015.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