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1.21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진짜 좋은 요리사는 평소 익숙한 재료로 전혀 다른 질감 시도
'엄마 손맛'만 찾으면 음식으로 돈 버는 뉴욕·홍콩 되기 힘들어
고급 한식 요리사가 청년 요리사 교육해 '더 높은 기준' 보여줘야
좀 '재수 없는' 얘기로 시작해야겠다.
성북동의 비싼 한식당에 다녀왔다. 얼마나 비싼가 하면, 가격을 얘기하면 다들 "미쳤구나!" 한다.
성북동의 비싼 한식당에 다녀왔다. 얼마나 비싼가 하면, 가격을 얘기하면 다들 "미쳤구나!" 한다.
다녀온 후 몇 명이 시비조로 물었다.
"그래, 얼마나 맛있었는데?" 뻔한 월급쟁이가 '꼴값'한다는 뉘앙스다.
"맛으로 치면, 우리 구내식당도 맛있지." 겸양이 아니다.
맛있게 먹은 걸로만 친다면 박을 넣어 끓인 함안의 연포탕,
고추장 팍팍 무쳐 구워낸 봉화의 오징어 연탄구이, 맑고 맛있지만 양이 적은 나주 곰탕,
그리고 엊그제 우리 회사 구내식당의 고기쫄면도 다 맛있었다.
그렇다면 그 '미친 가격' 식당에 왜 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미친 가격' 식당에 왜 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일까.
한 달쯤 전, 지인을 따라 그 식당에 들러 차 한잔 마신 적이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출신인 주인 겸 요리사가 꺼내 보여준 것은 1500년대의 문화재급 백자였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사발을 튕겨봤더니 맑은 종소리가 났다.
다리가 잘 빠진 소반, 나무를 깎아 만든 전통 찬합과 목가구, 돈만 있다고 수중에 들어올 물건은 아니었다.
이런 안목의 요리사 음식은 어떨지 궁금했다.
요리사는 '자랑질'이 심했는데, "그래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삐딱한 마음도 있었다.
결론은 그의 잘난 척을 좀 참아줘야 한다는 것.
결론은 그의 잘난 척을 좀 참아줘야 한다는 것.
혀로 느낀 음식 맛이나 여태껏 본 적 없는 그릇의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30년 묵은 간장으로 조려냈다는 공주에서 온 옥광 밤(栗)에서는 달큰한 맛이 났다.
30년 묵은 간장으로 조려냈다는 공주에서 온 옥광 밤(栗)에서는 달큰한 맛이 났다.
전통 간장을 오래 묵히면 소금 성분이 결정체가 되어 가라앉아 짠맛이 줄고 단맛이 는다.
밤을 간장에 조려내더니, 갈비에는 간장 대신 간수를 뺀 신안산(産) 소금을 썼다.
소금과 와인, 발효액으로 맛을 냈다는 갈비를 먹고 깜짝 놀랐다.
간장이 짠맛과 감칠맛, 단맛으로 무장했다면 소금은 대개 단순한 짠맛이다.
간장이 사륜구동 자동차라면 소금은 외발자전거다.
한 바퀴로 사륜 자동차보다 먼 길을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요리사는 익숙한 재료로 전혀 다른 질감을 시도하는 '화학 실험사'다.
좋은 요리사는 익숙한 재료로 전혀 다른 질감을 시도하는 '화학 실험사'다.
그런 점에서 '한식의 새 발견'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선수들'끼리는 서로 알아보는지, 미국·일본의 유명 요리사들이 단체로 회식하러 왔다 갔다.
동행 중에는 '애국자'들이 많았는데,
동행 중에는 '애국자'들이 많았는데,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만찬에 다녀온 이는 "그릇이며 음식이 '가짜 한식'이더라" 한탄했다.
외국의 한국 공관에서 밥을 먹어본 이는 "외국 공관 요리사들의 한식에 대한 기준이 너무 낮다"고 했다.
대통령은 세계 최일류를 만나고, 외교관은 그 나라에서 행세하는 사람을 만난다.
"한국 김치 원더풀" 수준을 넘어선, 한국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를 끌어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일류 요리사들이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해 주던 집밥'을 최고의 요리로 꼽는다.
우리나라의 많은 일류 요리사들이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해 주던 집밥'을 최고의 요리로 꼽는다.
'어머니의 손맛' 타령은 마누라 반찬 타박할 때는 유효하나, 프로 요리사의 한결같은 기준일 수는 없다.
그들의 지향점이 '집밥'이라면 홍콩이나 뉴욕, 파리처럼 '음식 산업'으로 돈 버는 나라, 도시가 되기는 힘들다.
요리사만 탓할 일은 아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맛있는 걸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
한식 요리사들에게 '더 높은 기준'을 보여줘야 한다.
돈 많은 이들이 비싼 요리를 먹고, 이런 요리사들이 돈을 벌고, 그들이 재능 을 사회에 '환원'토록 해야 한다.
가수 싸이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성공한 식당사업가인데 그가 이런 제안을 했다.
"고급 요리사들이 '청년 요리사'를 재교육시키고 비용은 지자체나 나라가 댄다.
대신 청년들은 외국 공관이나 정부기관 주방에서 교육받은 기간만큼 봉사한다."
우리가 먹는 만원짜리 요리는 물론, '청와대 음식'이 더 좋아질 수 있는 제안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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