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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대통령 호통정치 입문/[사설]대선 3주년 기념 국회의장-與野대표의 靑초청 어떤가

바람아님 2015. 12. 20. 00:34

[중앙일보] 입력 20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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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논설위원


요즘 대통령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 혼자만 국가를 걱정하고 모든 국민은 대통령을 걱정한다”는 우스개마저 나온다. 우리 대통령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터다. 문제는 애국심을 실천하는 방법인데, 대통령의 애국심이 늘 호통과 위압으로만 발현되기에 걱정스러운 거다.

 재단법인 박정희대통령 육영수여사 기념사업회가 1990년 펴낸 『겨레의 지도자』에 대통령이 쓴 서문을 읽어 보니 이유를 좀 알겠다. 대통령이 정계 입문하기 전에 쓴 8쪽 짧은 글인데도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오롯이 담겼다. 글에 아버지 대통령 이름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을 중심으로 한 한국 현대사’란 부제가 달린 책답게 서문은 아버지 대통령의 애국 성과를 잊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으로 시작한다.

 “열매는 열매고 뿌리는 뿌리일 뿐이라고 우겨온 것이 그동안의 우리나라 풍토였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이제 우리 사회는 5000년 겨레의 한(恨)인 가난을 불과 20년이 못 되어 몰아내고 서양이 1세기나 걸쳐 이룬 발전을 불과 4반세기 만에 이뤄낸 세대의 피땀 어린 노고를 일부러 모른 척하고 애써 묻어두면서 그 열매만을 맛보려 하는 풍토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대통령의 애국심이 민주화 과정에서 저평가되고 때론 부인됐던 불편한 기억이 우리 대통령이 애국심을 표출할 때마다 트라우마처럼 깨어나는 거다. 그러고는 이렇게 나아간다. “조국이 지나온 자취, 즉 역사를 (…) 외면·왜곡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외면·왜곡·부정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명되는 대목이다.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견해도 있다. “위정자의 무능은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죄악입니다. 왜냐하면 위정자의 오판과 무책임한 실정의 결과로 전쟁이 나서 죽도록 고생하는 사람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건 필연이다. “외부의 적 못지않게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인데 우리의 정치인들, (…) 국가 전체를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자제하고 양보하면서 사회의 기강과 질서를 지켰을까요?”

 이를 극복할 국가지도자의 자질이 나온다. “한 나라 지도자의 철학과 영도력은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미리미리 국가의 나아갈 길을 내다 볼 수 있는 선견지명과 통찰력,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결단, 때로는 비난을 감수하며 끝까지 밀고 나가는 소신과 의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언행, 민족의 앞날에 희망을 갖게 하고 참다운 목표를 제시하여 그것을 향해 모두 함께 뛰어갈 수 있게 하는 능력….”

 긴 문장을 하나도 생략하지 않았건만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포용력’ 같은 덕목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대신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인용이 뒤를 잇는다. “만약 모세가 위원회를 통해 정치를 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끝내 홍해를 건너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아버지 대통령의 리더십을 얘기하는 거지만 오싹할 만큼 자신이 대통령이 된 오늘을 똑바로 관통하고 있다. 1990년부터 다져진 신념이 얼마나 단단할까. 거기에 틀린 얘기가 하나도 없기에 더욱 무섭다. ‘내가 옳다’는 믿음을 뚫고 들어갈 여지가 조금도 없는 까닭이다.

 틀린 얘기는 없지만 빠진 게 있어서 위험하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게 그거다. 설득 말이다. 여당만 닦달하지 말고, 국회의장에 무리를 요구하지 말고, 야당을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결과가 있었을 터다.

 아직 안 늦었다. 남은 임기를 계속 이런 식으로 가져갈 순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하나도 가진 게 없어서 실패하는 게 아니다. 다른 건 다 갖고도 한 가지가 없어서 실패할 수 있는 것이다. 빠진 것 한 가지를 채우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결국 옳은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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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대선 3주년 기념 국회의장-與野대표의 靑초청 어떤가

동아일보 2015-12-19

그제 정의화 국회의장의 초청으로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가 서울 한남동 의장 공관에서 심야 회동을 갖고 선거구 획정과 경제활성화법, 테러방지법, 노동개혁 5개법 등 쟁점 법안 처리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번개회동에서 소맥(소주 맥주 화합주)으로 분위기를 다진 이들은 일요일인 20일 다시 만나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작금의 입법 마비, 국정 마비 사태를 감안하면 고무적인 일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최근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해 정 의장을 상대로 직권상정을 압박하는 우회작전에 나섰으나 번지수를 잘못 짚은 패착이다. 정 의장의 말마따나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은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현행 국회법상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못하는 것이지,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직권상정을 거부한 정 의장을 탓할 게 아니라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가 스스로를 탓해야 옳다.


그렇다고 정 의장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장은 입법부의 수장이다. 국회가 원활히 돌아가게 할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다. 국회선진화법과는 별개로 국회 마비가 걱정될 정도로 여야의 대립이 심각했다면 진즉에, 또 필요할 때마다 중재자로 나서 합의를 유도하는 선제적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한다. 정 의장은 그동안 그런 소임을 다했는가.


더 안타까운 건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와 야당을 비판하며 쟁점 법안들의 처리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어제도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정에 무한책임을 진 사람이다. 비판에 앞서 야당에 법안 통과를 설득하거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성심을 다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오늘은 18대 대선 3주년이 되는 날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 일성으로 ‘국민 대통합’을 다짐했다.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여야 지도부는 물론이고 격식에 맞지는 않지만 국회의장까지 청와대로 초청해 함께 국정 운영의 해법을 모색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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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백악관의 사진 정치

중앙일보 2015-12-19

여기, 사진 한 장이 있다. 1999년 백악관 크리스마스 파티장에 선 빌 클린턴 대통령 부부의 미소가 환하다. 함께 포즈를 취한 제임스 로건 공화당 의원 부부의 표정도 밝다. 사진만 봐서는 절친하기 그지없는 단짝 같지만 100% 연출이다. 클린턴 부부와 로건 의원은 질긴 악연으로 맺어진 사이이기 때문이다. 98년 클린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반(反)클린턴 연대의 리더 격이었던 이가 로건 의원이다. 로건의 주도하에 하원 탄핵소추팀은 클린턴을 끈질기게 몰아붙였다. 클린턴에게 로건은 꿈에 나올까 무서운 인물이었을 터다.


 그런 로건 의원을 클린턴은 백악관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청했다. 탄핵 정국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이다. 로건 의원도 초청장을 휴지통에 넣는 대신 나비넥타이를 매고 백악관으로 향했다. 과거는 덮고 클린턴은 “와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고 로건은 이후 한 인터뷰에서 “탄핵 정국의 불화가 풀리는 듯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클린턴은 적까지 끌어안을 줄 아는 포용의 아이콘이 됐다.


 클린턴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 모두에게 크리스마스 포토 세션은 중요한 연례행사다. 백악관식 사진 정치다. 여야 상·하원 의원들을 초청해 그들과 일일이 따로 사진을 찍으며 짧게나마 대화를 나눈다. 수백 명의 손님들을 이렇게 응대하려면 3시간 정도 서 있는 건 기본이라서 백악관 비서진은 대통령이 서는 자리 밑에 푹신한 요를 깔아놓는 등의 조치를 궁리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럼에도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을 이렇게 벌 세우는 전통이 이어지는 이유는 이것이 소통의 기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이 크리스마스 포토 세션을 “사진 한 장 그 이상의 가치”라고 평했다.


 우린 어떤가. 어느 순간부터 한국 정치는 불통의 장이 된 것 같다. “속이 타 들어 간다”며 국회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대통령도, “정치가 싫다”는 제1야당 대표도 소통의 방식은 일방통행 일색이다. 불통의 정치를 보는 국민의 속도 타 들어 가고 정치가 싫어질 지경이다. 미워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악수라도 하며 체온을 전하면 나으련만,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열흘 남짓 후면 누구나 한 살 더 먹는다. 내년엔 좀 나아지려나. 백악관 크리스마스 파티처럼, 대통령과 여야가 두루 만나 하루쯤은 환한 표정으로 새해 떡국 한 그릇 나누는 장면을 보고 싶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