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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朴 대통령은 바뀌지 않았다

바람아님 2015. 12. 23. 00:39

조선일보 : 2015.12.22 

朴대통령, 자기 진영 닦달해선 노동개혁·민생법안 동력 못얻어
야당 만나고 설득하는 과정은 국민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技術
레임덕 없이 일할 시간 1년 남아… 권위와 완고함 깨야 성공할 것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지난 3년간 많은 논평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방식과 정치 운용 행태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 의견을 내고 세론(世論)에 비친 그의 긍정적 측면 못지않게 부정적 측면을 지적해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변화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헛소리했고 헛수고한 셈이다.

그동안 우리는 박 대통령이 자존심이 강하고 자아적(自我的) 성격이 짙은 데다 자기주장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좋게 말해서 원칙에 투철하고 신뢰를 제일의적 가치로 여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말로 하면 고집 세고 누구도 믿지 않고 남의 말에 쉽게 귀를 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여성스러운 감성 정치를 펼 것이라느니, 대통합의 기수가 될 것이라느니, 가족을 거느리는 가모장적(家母長的) 역할을 할 것이라는 등의 기대를 모았던 분 입에서 우리는 '배신'이니 '의리'니 '진실' 같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논쟁적인 단어들을 들어야 했다. 이 밖에도 박 대통령이 입에 올린 '진돗개 살점' '천추의 한' '사생결단' '위선' 등의 단어들은 살벌한 분위기, 전투적인 정치 현장을 상징한다.

박 대통령은 의외로 많은 원초적(?) 반대자를 갖고 있다. 단순한 정책 이견자나 반대자가 아니라 증오와 원한에 찬 적대자들이다. 아버지 때문일까? 여성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좌파 특히 친북 요소를 차단하려는 이념 성향 때문일까? 어쨌든 그런 '원수' 같은 증오 세력이 박 대통령에게 쏟아내는 저주에는 좌고우면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들은 어차피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를 도와 박근혜 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동참할 우호 세력 또는 호의적 사람들의 조언과 충고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경험으로는 박 대통령은 그런 경우에도 귀를 연 흔적이 없고 변화의 여지를 보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 내용이 정책의 문제라면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사의 문제고 방법의 문제고 스타일의 문제임에도 그는 초지일관으로 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창출에 노심초사하며 노동개혁과 기타 민생법안을 국회가 서둘러 입법화해줄 것을 때로는 호소하고 때로는 강하게 압박할 때, 많은 국민은 그에 동조하며 야당을 나무라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노력은 동력(動力)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자기 진영에서만 닦달하고 있을 뿐 설득 대상인 반대편 야당과는 대면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일자리 입법의 중요성과 경제의 긴박성을 강조하는 마당은 으레 국무회의거나 비서관회의거나 여당 대표와의 자리였다. 정작 박 대통령이 싸울 마당은 야당이고 국회인데도 말이다.

청와대 사람들은 주장한다. 3년 동안 국회에 가서 국정연설을 한 대통령은 박 대통령뿐이고 야당 대표들과 여섯 차례나 만난 것도 박 대통령뿐이라고. 그러나 그가 만난 것은 여·야 대표지 야당 대표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여당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야당 대표와 1대1로 만날 이유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프로토콜로 있는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이 그렇게 애타게 호소하는 입법이라면, 그것이 나라를 구하고 국민을 위하고 청년을 살리는 길이라면 그깟 형식과 체면치레가 무엇이 중요한가? 내가 박 대통령의 호소에 쉽게 감동할 수 없는 이유는 박 대통령에게는 '야당 따위'는 안 만나도 될 정도로 절박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 기술로 봐도 그렇다. 지금 야당 사정을 볼 때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한다고 해서 일이 풀릴 소지는 없다. 그렇더라도 야당과 만나 설득 작업을 거치면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을 한 것이고 공은 야당으로 넘어간다. 그것이 국민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박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는 엊그제로 딱 2년 남았다. 그나마도 레임덕 현상에 시달리지 않을 기간은 잘해야 1년 미만이다. 야당은 내부의 사정 때문에라도 박 정부를 더욱 괴롭힐 것이고, 여당도 공천 결과에 따라서는 이탈자가 양산되면서 균열의 폭이 커질 것이다. 이미 국회의장이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현상이 생기고 있고 김무성 대표 체제가 언제까지 박 대통령 앞에서 '야단맞는 학생'처럼 고개 숙이고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남은 기간 또는 퇴임 후라도 '친박'을 유지할 이런저런 장치를 마련하려고 애쓰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사에서 '퇴임 권력'이 주효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이제 박 대통령은 자신이 남길 '호랑이 가죽'이 무엇인가를 고심해야 할 때다. 후대의 역사는 오늘의 꽉 막힌 정국과 경제 살리기 입법의 지지부진이 반드시 야당 때문이고 좌파 세력 때문이고 증오집단 때문이라고 기록하지 않는다. 역사는 그것이 박근혜 시대의 결손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탈출구는 심기일전하는 자신의 변화뿐이다. 자신을 스스로 감싸고 있는 권위와 완고함의 껍질을 깨면 여성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편하고 살맛 나는 세상'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