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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대통령이 다녀간 집' 만드는 오바마의 휴가

바람아님 2015. 12. 21. 16:31

(출처-조선일보 2015.12.21 윤정호 워싱턴 특파원)


윤정호 워싱턴 특파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휴가를 떠났다. 무려 16일간이다. 여름에도 17일을 갔다. 
겨울은 하와이, 여름은 매사추세츠주(州)의 마서스 비니야드. 두 곳 모두 최고의 휴양지다. 
미국인 가운데 자기가 태어난 주(州)를 일생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휴가 한 번에 쏟아붓는 혈세는 무려 수백억원. 팔자가 좋아 보인다. 우리 대통령은 휴가를 어디로 가는지,
가서 뭘 하는지 드러내지를 않는다. 그러다 휴가 끝나고 청와대로 돌아오면 그때에야 일부 '추억'을 
공개한다. 놀러가는 모양새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다.

미국은 다르다. 휴가 첫날 오바마 가족이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타고 내리는 장면부터 대부분이 공개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 휴가 때 자기 휴가를 떠난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반면 대통령 휴가에 동행한다. 
공동 취재하는 풀(pool)단은 벌써 오바마가 지인들과 골프를 즐겼다는 기사를 19일(현지 시각) 송고했다. 
일할 땐 열심히, 놀 때는 더 열심히 하자는 주의라 그런지, 대통령의 휴가에 대부분은 관대하다.

오바마가 자신이 어릴 때 자랐던 하와이를 8년째 찾자, 가장 반색하는 이들은 하와이 주민들이다. 
트위터, 블로그 등에 오바마가 뭘 하는지, 어디에 들르는지, 골프는 어디서 치는지를 기자 못지않게 실시간 중계한다. 
하룻밤에 3500달러(약 410만원)짜리 임시 저택 내부는 사진 수십 장을 통해 이미 공개됐다. 바다 위에서 경계하는 
현지 경찰의 모습도 거리낌 없이 SNS상에 노출된다. 우리 같으면 벌써 치도곤이라도 당했을 일이다.

백악관을 본뜬 사이트 'not The White House(백악관 아냐)'에는 지난 8년간 오바마가 들렀던 곳이 지도 위에 빼곡히 표시돼 
있다. 서핑, 트레킹, 골프, 볼링, 식사를 한 곳은 물론이고, 오바마의 할머니가 살던 아파트까지 나타난다. 
하와이 사람들은 오바마가 가는 곳마다 그의 이름을 붙여 '명소'로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오바마가 수영을 즐겨 '오바마 비치'로 불리는 샌디 해변이다. 잘게 간 얼음가루 위에 무지갯빛 시럽을 
뿌린 '셰이브 아이스'는 아예 '오바마 빙수'로 더 잘 알려졌다. 이 '빙수'는 최근 국내에까지 진출했다. 
오바마 브랜드가 국제화한 셈이다. 800만명이 넘는 하와이 관광객 상당수가 기왕이면 미국 대통령이 가본 곳부터 들른다며 
'성지순례'를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통령의 휴가는 일등 공신이다.

오바마 개인에게 휴가는 자유다. 일상 중에도 가끔 백악관을 벗어나 인근 패스트푸드점을 '습격'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골프를 즐기는 것은 탁 트인 공간에서 (골프를 치는 4시간 정도)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나마 백악관은 상당히 열린 공간인데도, 그에겐 '감옥'이었다.

지난여름,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를 청와대에서 보냈다. 아무도 없는 구중궁궐에 계속 혼자였다. 
정국 구상을 했다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었을 것이다. 일상을 깨는 게 휴가다. 
겨울이면 어떤가. 
전국을 휴가지 삼아 '대통령 다녀간 집'을 수십 개 만드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