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마이크 앞에만 서면, SNS 자판에 손만 올리면 돌변한다. 아무래도 이종걸 막말의 ‘끝판왕’은 ‘박근혜 그년’ 사건이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인상도 좋으시고 말씀도 잘하시는데 왜 저보고 ‘그년’ ‘저년’ 하셨어요?”라고 대놓고 무안을 주었을까. 그 자리에선 바로 사과했던 이종걸이 22일 또 박 대통령을 비난하며 “국민이 병신이냐, 바보냐”고 막말했다. 그런데 이번 ‘국민 병신’ 발언은 단순한 막말 같지가 않다.
▷되도 않는 ‘민중총궐기’란 이름의 19일 3차 집회 때 ‘병신년 박근혜’란 구호가 등장했다. 지금 SNS에선 박 대통령과 새해를 조합한 ‘박근혜 병신년 지지율’ ‘박근혜 병신년 연하장’ 따위의 악성 조어들이 돌고 있다. ‘병신(病身)’은 ‘바보’라는 말과는 또 다르다. 장애인을 극도로 비하한 단어여서 정치인에겐 금기어나 마찬가지. 이종걸이 사실상 금기어를 입에 올린 걸 어떻게 봐야 할까. 벌써부터 새해의 60간지(干支) 이름인 ‘병신(丙申)년’이 각종 악성 저질 패러디에 쓰일 거란 우려가 나온다.
▷천간(天干)의 병(丙)은 씨앗이 줄기를 뻗는 모습이고, 붉은색을 띤다. 지지(地支)의 신(申)은 원숭이다. 즉 병신년은 ‘붉은 원숭이가 뻗어나간다’는 좋은 뜻을 담고 있다. 예로부터 원숭이는 지혜와 사교성의 상징이 아닌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해(936년)도, 팔만대장경 제작이 시작된 해도 병신년(1236년)이다. 추락이냐, 비상(飛上)이냐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국운을 널리 뻗어도 시원찮을 새해를 ‘병신년∼’이나 읊조리며 지저분하게 맞을 수는 없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물상] 히딩크의 '거울' (0) | 2015.12.26 |
---|---|
[설왕설래] 성자(聖者) (0) | 2015.12.26 |
[일사일언] 새로운 나이 계산법 (0) | 2015.12.24 |
[특파원 리포트] '대통령이 다녀간 집' 만드는 오바마의 휴가 (0) | 2015.12.21 |
[길섶에서] ,가족의 정(情)/손성진 논설실장 (0) | 2015.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