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설왕설래] 성자(聖者)

바람아님 2015. 12. 26. 01:05
세계일보 22015-12-25

성자는 범인(凡人)과 다르다. 모두가 그의 말을 양식으로 삼는다. 태어난 순서대로 열거하면 석가모니, 공자, 예수, 마호메트···. 수천년 역사를 두고 성자 반열에 오른 이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세계 곳곳에 캐럴송이 요란하다. 부처님 오신 날, 쟁쟁한 목탁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성자는 누구일까.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빛을 등진 동굴 속 죄수는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 본다. 다른 것을 볼 수 없으니 그림자를 궁극의 실재로 굳게 믿는다. 한 죄수가 몸을 돌려 동굴 속을 비추는 빛을 봤다면. 그는 이렇게 소리칠 터다.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뭘까. “무슨 헛소리냐.” 주먹이 날아가지 않으면 다행일까.


 


예수도 그 빛을 본 사람이다. 빛을 더 빛나게 한 사람은 제자들이다. 그의 제자들이 2000년 가까이 신학체계를 다듬어 왔으니, 절차탁마는 성경을 인류 정신의 보배로 만들었다.

예수를 곤혹스럽게 한 사람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니체. “신은 죽었다”고 했다. 화난 기독교인 왈 “니체는 죽었다.” 캐럴송이 아직도 요란하니 132년 전 니체의 말은 철학적 사유로 남은 걸까. 그가 그토록 ‘부정의 칼’을 들이댄 예수. 예수가 성자인 것은 니체의 말에 가 닿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들은 초인으로 살기를 원한다.” 초인은 누구일까. ‘빛을 본’ 사람이 아니겠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바로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조로아스터다. 예수가 태어나던 때 조로아스터교는 오리엔트를 덮고 있었다. 유대교도 있었다. 아후라 마즈다를 유일신으로 삼은 조로아스터교. 배화교(拜火敎)라고도 한다. 불을 피워 놓고 예배를 올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빛을 본 예수, 온전할 수 있었을까.

예수가 본 빛은 무엇일까. 사랑과 재림.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이런 말을 했다. “기독교가 헬라스 문명과 다른 것은 사랑을 말했기 때문이며, 조로아스터교·유대교와 다른 것은 재림을 말했기 때문이다.” 종말과 심판으로만 세상을 재단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지상에 천국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일까.


국제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의 테러로 지구촌은 공포에 떨고 있다. 성자가 재림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어리석은 아들딸들아, 내가 본 빛을 이미 말해주지 않았더냐.” 동굴 속 죄수들에게 사랑이 고픈 때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