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2.19 민학수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홍명보와 함께 공을 찬다는 게 꿈같았다.
홍명보가 2006년 독일월드컵 대표팀 코치로 발탁돼 처음 지도자로 나섰을 때였다.
대표팀이 쉬는 날 축구협회 직원들과 취재진이 어울려 축구를 했다.
그러면서 홍명보에게서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늘 다음 동작을 생각하면서 패스를 받고, 패스를 하면서 움직이세요. 한순간도 동작이 끊기면 안 됩니다.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지 마세요. 손해니까."
조리 있는 설명을 듣자니 4연속 월드컵 본선을 뛴 '아시아의 리베로'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다.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첫 동메달을 딴 홍명보 감독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첫 동메달을 딴 홍명보 감독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함께 간 식당에서 그는 주변 모두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사진도 한 장씩 찍도록 했다.
"어쩌면 그렇게 잘생기셨어요" 하며 사인지를 내밀던 아주머니 말에 그는 소년처럼 쑥스러워했다.
'홍명보 리더십'이 각광받던 때였다. '스타 선수에 기대지 않고 똘똘 뭉친 원 팀(one team)을 만들어냈다.
플랜B를 넘어 플랜 C까지 준비돼 있다….' 한국 축구도 확실한 차세대 지도자를 얻은 듯했다.
▶그에겐 브라질월드컵을 1년 앞두고 팀을 떠맡다시피 한 게 화근이었다.
인연 있는 선수만 선발한다는 '의리 축구'부터 '지나치게 단순한 전술'까지 갖은 비난이 쏟아졌다.
귀국 공항에선 엿 세례를 받았다. 그는 계약 기간을 못 채우고 쫓겨났다.
브라질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나라엔 '무적 함대' 스페인도 있었다.
"선수 선발부터 전술까지 총체적 난국"이라고 야단들이었다.
그러나 "실패에서 배워 팀을 재건하라"는 격려와 함께 스페인 감독은 유임됐다.
▶홍명보는 지난 1년 반 대인공포증에 시달릴 만큼 사람을 꺼렸다. 아파트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아들까지 "한국 떠나 살면 안 되느냐"고 했다 한다.
그가 중국 프로축구 항저우 감독으로 떠난다. 엊그제 감독 계약을 하고 돌아온 그는 상처가 가시지 않은 듯했다.
"지난 20여 년 국민 기대에 맞추느라 많이 노력했지만 이젠 나와 가족을 좀 더 생각하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내 명예를 말하지만 그저 축구를 좋아하기에 중국을 선택했을 뿐이다."
▶중국은 홍명보를 원했고 그는 중국을 재기의 땅으로 삼았다.
그를 보며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치르다 해임된 차범근 감독을 떠올렸다.
차범근도 견디다 못해 중국에서 감독으로 일했다.
그때보다 우리 사회는 훨씬 더 번드르르해졌다.
하나 실패에서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마음의 크기는 조금도 자라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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