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설왕설래] "천천히 드세요"

바람아님 2015. 12. 19. 01:40
세계일보 2015-12-18

몇년 전 아르헨티나 여행을 하면서 놀란 일 중 하나가 평균 두세 시간 걸리는 식사시간이었다. 점심에도 와인을 곁들여 음식과 담소를 즐기고, 오후 8시쯤 시작되는 저녁 식사는 훨씬 여유로웠다. 일행 중 아르헨티나 언론인이 있었는데 가족이나 회사 동료, 친구 등과 어울리는 식사시간이 그들 일상의 중심이라고 했다.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미국인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어.” 그말을 들으면서 ‘빨리빨리’의 나라, 한국인답게 ‘여기 사람들은 도대체 일은 언제 하지? 그러니까 빈곤계층이 50%나 되지’라는 생각을 했다.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가 식사시간과 국가 성장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글을 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8년 17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멕시코, 캐나다, 미국, 영국 등 10개국은 하루평균 식사시간이 100분이 채 안 됐다. 이들 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00분 이상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등 7개국 성장률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식사를 빨리하는 만큼 일을 많이, 열심히 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아르헨티나 사례를 떠올리면 그럴 법하다. 식사시간이 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음식·와인 문화가 발달한 유럽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유럽’으로 불린다. 식사시간이 짧은 멕시코 캐나다 미국은 타코와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 의 왕국이다.


빠른 식습관이 나라 성장률을 끌어올릴지는 몰라도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상식이다. 식사시간이 짧을수록 비만, 심혈관계 질환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음식을 빨리 먹다보면 뇌에서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과식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과식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 일과 똑같다고 하지 않던가. 최근에는 위염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강북삼성병원 서울종합건진센터 고병준 교수팀 조사에 따르면 평소 식사시간이 15분 이내로 짧은 사람은 그 이상인 사람보다 위염 발생 위험이 최대 1.9배 높았다. 건강한 밥상만큼이나 ‘느린’ 식습관도 중요하다.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건 기본이고, 밥상 대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아침, 저녁 식탁에서 밥상머리 교육까지 이뤄진다면 가족 건강과 더불어 가족애를 키우는 금상첨화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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