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오후여담'社畜'

바람아님 2015. 12. 17. 00:47
문화일보 2015-12-15


내년부터 60세 정년이 부분 도입된다. 300인 이상 직장이 일차 대상이다. 2017년부터는 전면 확대 시행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앞선 ‘65세 정년’도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금세기 일도 아닌 19세기 말 일이다. ‘비스마르크 연령’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독일의 철혈 재상 오토 비스마르크의 작품이다. 1889년, 그는 65세가 되면 고령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사회보장 제도로 시행했다. 요즘으로 치면 훌륭한 정치지도자로 박수받을 일인지도 모르지만, 당시로선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평균수명이 채 60세도 안 되던 시절이었으니, 65세 은퇴란 죽을 때까지 일하란 뜻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노동 규제의 역사는 이보다 530여 년이 더 길다. 영국 에드워드 3세의 이른바 ‘1351년 노동법’이 시초로 꼽힌다. 이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만든 ‘임금인상 제한법’이다. 게다가 60세 이하 성인은 구걸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노동의 의무까지 지웠다. 특히, 다른 농장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일꾼을 데려오지도 못하게 했다.(최승노 ‘노동의 가치’) 이러한 노동 권력의 부조리는 때로 예술의 형식을 빌려 실상을 고발함으로써 ‘탈탈 털린 영혼들’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최근 들어 ‘사축(社畜)’이란 말이 유행이다. 회사에서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을 가리키는 일본의 조어다. 5∼6년 전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출처는 ‘사축 동화(童話)’. 올 4월쯤 일본의 인기 인터넷 동화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내용은 기존의 ‘인어공주’ ‘백설공주’ ‘성냥팔이 소녀’ 같은 동화를 사축 버전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이후 국내에도 인터넷-서점-극장가에 사축이 뜨기 시작했다. 페이스북과 서점에는 직장인 공감 백서 ‘사축일기(日記)’가 불티나고, 극장에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가 히트 중이다. 이들은 열정만 있으면 힘들 게 뭐냐는 상사의 질책에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2030 ‘n포 세대’나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갓 입사한 미생(未生)들을 대상으로 한 단행본·드라마·영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요즘이다. 젊은이들에게 포기(抛棄) 대신 꿈을 주고 희망을 주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할 정치인들은 어디로 갔는가.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게 정치인의 본업 아니던가.


황성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