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패션쇼하러 山 가세요?

바람아님 2015. 12. 15. 10:29

(출처-조선일보 2015.12.15 팀 알퍼·칼럼니스트 김도원 화백)


팀 알퍼·칼럼니스트 사진'등산'을 영어로 옮길 때 'mountain climbing(마운틴 클라이밍)'이라고 쓰는 걸 종종 본다. 
내 생각에 이는 오역이다. 한국식 등산을 영어로 옮기면 'hiking(하이킹)'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마운틴 클라이밍은 보통 엄홍길 대장처럼 알프스나 히말라야 산맥에서 하는 
본격적인 등반을 가리킨다.

그런데 주말마다 한국의 온 산을 점령하는 등산객들의 옷차림이나 장비를 보면 내 생각이 맞는 건지 
헷갈린다. 그들 대부분은 에베레스트산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장비와 옷을 갖추고 있다. 
아마 한국 등산객 대부분은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던 에드먼드 힐러리 경(卿)보다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힐러리 경이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라. 
요즘 한국에서 힐러리 경처럼 입고 등산하면 비웃음당하기 딱 좋다.

영국에서 하이킹(한국식으로 등산!)에 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국 사람이 본다면 비웃을 것이 틀림없다. 
보통 영국 사람들은 낡은 운동화에 코트 한 벌 걸친 허름한 옷차림으로 하이킹하러 간다. 
영국의 야외에는 진흙탕이 많아서 좋은 옷을 입고 나갔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거기 비하면 한국의 등산로는 패션쇼 런웨이나 마찬가지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한국에선 등산족(族)만 그런 게 아니다. 주말이면 서울 한강 둔치를 점령하는 자전거족을 보라. 
그들은 한 대에 100만원이 넘을 것 같은 멋진 자전거에 LED 야광등(낮에 타는데 왜?)을 달고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쓸 것 같은 헬멧을 쓰고 질주한다. 
조기축구회는 또 어떤가. 2년쯤 전 처음 조기축구회에 가입했을 때 이름이 적힌 유니폼 상하의 두 벌과  축구 전용 양말 
세 켤레, 겨울철 운동용 패딩코트까지 지급받았다. 
영국에서 조기축구회를 할 땐 보통 이런 식이었다. "내일 경기 있는데, 웬만하면 하얀색으로 입고 와."

영국에서 축구나 하이킹을 할 땐 '어디 자선단체에서 기부하고 남은 옷이나 장비 없나' 하고 찾아다닐 때가 많았다. 
반대로 한국에서 축구나 등산을 하려면 반드시 지갑 사정부터 체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