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멸종 위기 '흉부외과'

바람아님 2015. 12. 14. 08:10

(출처-조선일보 2015.12.14 정의석 인제대 상계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정의석 인제대 상계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사진바나나가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기사를 봤다. '푸사리움 옥시스포룸'이라는 곰팡이 때문이다. 
바나나 나무뿌리까지 썩게 하는 이 곰팡이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치료법도 없다고 했다. 
마트로 갔다. 가판대에 노란 바나나가 보였다. 바구니에 바나나를 담았다. 
멸종은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흔하다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골목마다 보이던 제비도 총총 뛰던 참새도 이미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한 세대 전에는 흔하게 보였던 여우, 올빼미, 따오기도 이미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됐다. 
단군신화의 주인공인 곰과 호랑이는 1급 멸종위기종이다. 
멸종위기종 명단 맨 끝에 '흉부외과'를 슬쩍 넣어 보았다. 어색하지 않았다.

흉부외과 지원자가 흔하던 시절이 있었다. 20년 전이다. 
흉부외과를 전공하기 위해서는 지원자끼리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흉부외과는 외과계의 꽃이라 불렸다. 
시간은 갔고 꽃은 시들었다. 타인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무겁고 개인적 삶까지 포기할 만큼 힘들었다. 
지원자가 사라졌다. 남은 자들은 고독하고 지쳐갔다. 결국 많은 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가 멸종됐다. 
이제 매년 이맘때가 되면 "흉부외과 전공의 미달사태, 미래의 심장·폐수술은 누구 손에?" 같은 기사가 나온다. 
흔했다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지난 10월 지리산에 두 마리의 반달가슴곰이 방사됐다. 
2004년부터 진행된 복원 사업으로 지금 지리산에는 38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다.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 개체 수 유지가 중요하다. 
과학자들은 50여 마리를 예상한다. 지속적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 전국적으로 21명의 젊은 의사가 흉부외과 신입 전공의 지원(정원 4  8명)을 했다. 
그들은 험한 의료 생태계에서 살아남아 흉부외과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21명이 흉부외과 종 유지를 위한 최소 개체 수보다 많은 숫자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한 20년이 지난 후 1급 멸종위기종 명단 중간쯤에 우리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을까 불안하다.

오늘 아침에도 전국의 흉부외과 의사들은 환자의 미래를 위해 수술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