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횡설수설/한기흥]당신의 커피 한 잔은.

바람아님 2015. 12. 20. 00:39
동아일보 2015-12-18

“커피 맛은 천 번의 키스보다 더 감미롭고 머스캣 와인보다 더 달콤해요.” 커피를 많이 마시지 말라는 아빠의 꾸중에 딸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화가 난 아빠가 “그러면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그제야 “당장 끊을 테니 시집보내 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아빠가 신랑감을 찾으러 나간 사이 깜찍한 딸은 자신에게 청혼하려면 커피 마실 자유를 줘야 한다는 방을 몰래 붙인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1732년 작곡한 커피 칸타타는 커피 좋아하는 아가씨의 이야기를 경쾌한 곡조에 담았다.


▷지금은 ‘홍차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17세기 영국에선 커피하우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남자들은 몰려다니며 술을 마시고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로 해장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남성 중심의 커피하우스 문화에서 소외된 여성들은 1674년 술이 아니라 커피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발표했다. 엉뚱하게 커피가 남자들을 성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주장에 남자들은 오히려 힘이 넘친다고 반박했다. 어이없지만 인쇄물까지 동원했으니 당시엔 꽤 뜨거운 논쟁이었던 것 같다.


▷서구식 식생활이 보편화해 아침밥 대신 시리얼이나 커피로 때우는 젊은이들이 많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시리얼 회사의 창립자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만 미국의 찰스 윌리엄 포스트는 원래 커피를 몸에 해로운 마약이라고 주장하는 자극적인 광고를 내고 커피 대용 음료인 포스텀을 팔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공공연히 마셨으니 커피의 낭만을 혼자 즐긴 것일까.


▷커피를 즐기는 국민이 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커피의 1회 제공 기준량을 100mL에서 200mL로 늘려 고시했다. 자판기 종이컵의 용량이 110mL이니 그 두 배 가까이 된다. 커피전문점마다 명칭도, 용량도 달라 헷갈리는 커피 한 잔. 하루 몇 잔까지 건강에 괜찮은지도 알쏭달쏭하지만 그것까지 정부에 물을 것인가. 기분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있어야 사는 맛이 있지.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