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살며 생각하며>무신론자가 생각하는 永生

바람아님 2015. 12. 25. 00:28
문화일보 2015-12-24

한승원 / 소설가

첫눈이 내릴 때면, 어디론가 사라졌던 그리운 사람들의 혼령들이 하얀 눈송이의 모습을 하고 내 시야 속에 나타난 듯싶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도 사라져 간 사람들의 눈망울이라 생각된다. 그 별들 하나하나가 무궁무진한 사연들을 담고 있을 듯싶다. 이런저런 전광판에서 바뀌는 숫자들을 조종하는 것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현대적인 도깨비들의 손인 듯싶다.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지극히 합리적이지 못하다. 내 삶은 합리와 비합리가 반반이다. 과학적인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나는 알 수 없는 비과학적인 신비를 수긍하고 허황한 것들을 믿는다.



 

이십 년 전에 서울을 버리고 장흥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와서 산다.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으로 연안 바다와 어촌에 관한 소설을 많이 썼다. 바다를 서정적인 공간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서사적인 공간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 바다에 관한 글을 그렇게 많이 쓰고서도 다시 바닷가로 이사 왔느냐고 빈정대는 사람이 있지만, 그건 내 속을 몰라서다. 나를 시인 소설가로 만들어준 것은 구십 퍼센트가 바다라고 생각한다. 바다나 물의 세계는 앞으로도 나의 황혼을 더욱 튼실하게 가꿔 줄 것이라고 믿는다.


바다를 한없이 좋아하지만, 내겐 물 무섬증이 있다. 짙푸른 바다 한가운데로 길게 뻗어 나가는 부두 위를 걸어갈 때면 양쪽에서 일렁거리는 바닷물이 간과 심장에 경련이 일 정도로 무섭다. 양쪽에서 철썩거리는 짙푸른 물결이 살아 있는 괴물처럼 느껴진다. 물결 속에서 알 수 없는 손이 순간적으로 뻗어 나와 내 발목을 이끌고 심연으로 들어가고, 그리하여 하릴없이 죽게 될 것만 같다. 그렇다고 내가 헤엄을 못 치는 건 아니다. 평영도 자유형도 잘한다. 다만, 물속 깊이 들어가는 잠수는 검푸른 어둠이 겁나서 하지 않는다.


바다와 거기에 떠 있는 섬의 관계를 나는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나눠 생각한다. 바다는 파도로써 섬을 학대하기도 하고 애무하기도 한다. 사랑에는 가학성과 피학성이 내재돼 있다. 학대하면서도 환희심을 느끼고 학대당하면서도 오르가슴을 느낀다. 바다와 섬이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인 듯싶다.

노자가 ‘곡신(谷神)은 현빈(玄牝·그윽한 암컷)이고 현빈의 문은 천지근(우주의 뿌리)’이라고 한 것은 바다의 속성을 아주 잘 이야기한 듯싶다. 말하자면 바다는 우주적인 자궁이다. 따라서 바다는 외경(畏敬)의 존재이고 죽음이 없는 신의 또 다른 얼굴이다.

나는 바닷물뿐만 아니라 호수의 푸른 물도 무섭고 대중목욕탕의 넘실거리는 욕조에 담긴 물도 무섭다.


어린 시절 고향 집의 마당 가장자리에 작은 방죽이 있었다. 뒤란의 옹달샘에서 흘러내린 물을 저장한 한 평쯤의 넓이인데 어른들은 그것을 허드렛물로 썼다. 다섯 살 때 혼자 그 방죽에서 나뭇잎 뱃놀이를 하다가 거꾸로 처박혔다. 어른의 무릎이 잠길 정도의 깊이였는데 거꾸로 처박힌 나는 검푸른 어둠의 세계와 싸웠다. 물을 코로 입으로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죽음의 어귀에 진을 치고 있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사력을 다해 기어 나왔고, 겁에 질린 채 엉엉 울면서 마당을 건너고 골목길을 달려 밭에서 일하는 어머니에게로 갔다. 그때 내가 그 방죽에서 기어 나오지 못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


그때의 정신적 상처(트라우마)가 물 무섬증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에 가까이 가면 빠져 죽을 것 같은 무섬증.

물은 우주를 생성시키는 순환하는 넋이다. 바닷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구름은 육지에 비를 뿌리고, 빗물은 지하수와 지표수로 흘러 냇물과 강이 되어 바다로 되돌아간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 앞에 서면 나는 현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다. 바닷물은 달의 인력에 의해 밀물과 썰물이 되어 흐른다. 나는 아내가 화장실에서 목욕하고 흘려보내는 물소리를 들을 때면 요의를 느낀다. 내 몸뚱이는 물로 되어 있으므로 나는 달몸살을 아주 심하게 한다. 달몸살이란 달이 중천에 떠 대낮같이 밝으면 바다의 썰물 밀물이나 파도처럼 들썽거리는 것이다.


남성에게 있어서는 여성이 물이다. 나의 물 무섬증은 여성을 대할 때에도 해당한다. 세상의 모든 남성은 여성 속에 들어가면 다 익사하고 말지 않는가. 나는 화려하고 요염한 여성 앞에서는 심한 어지럼증을 느낀다.

세상에는 많은 단체가 있다. 향우회, 동창회, 친목회 등의 이런저런 모임. 나는 모든 단체에의 가입을 싫어한다. 단체라는 것에서 물 무섬증을 느낀다. 모든 단체는 목적성이 뚜렷한 이익 단체일수록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가령 인구 천만이 넘는 서울은 자기 나름의 괴물이 되어 있다. 내가 단체에 가입하기를 싫어하는 것은, 그 단체에 들어감으로써 그 단체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나의 나다운 것을 빼앗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식물성의 아나키스트인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나의 모순된 것은 많다. 나는 죽은 다음에 천당이나 극락, 저승에 간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도 나의 영생(永生)을 믿는다. 나는 내가 죽은 다음 화장해 달라고 아들딸에게 유언해 두었다. 내 살과 뼈는 타고 증발하여 구름이 되어 떠돌다가 안개나 비가 되어 대지에 뿌려질 것이다. 장미밭에 뿌려져서 장미꽃으로 피어날 것이고, 벼와 깨와 콩나무와 배추에 뿌려져서 쌀과 깨와 콩과 배추가 되어 누군가의 몸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소멸하지 않고 이 세상에 영원히 어떠한 모양새로든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합리주의자가 우주는 합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할지라도 나는 합리와 불합리가 반반이라고 생각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