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이고, 25일은 성탄절이자 공휴일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크리스마스 계획을 묻고, 또 질문 받으면서 오늘까지 왔을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인터넷에는 수면제를 먹고 자서 26일에 깨겠다는 둥, 이번 크리스마스도 케빈과 함께라는 등 한탄이 넘쳐난다. 애인과 함께할 수 없는, 혹은 어딘가로 나가서 즐길 수 없는 크리스마스는 ‘훈훈’하지 못하므로 창피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즐기는 것은 중요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카드 광고 CM송은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로, 그 당시 굉장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소비와 유흥을 죄악처럼 여겨온 한국에 도래한 메시아적 메시지…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당당하게 향락을 누리자는 선언은 이제 꽤 보편적인 감성이 된 듯하다. 우리는 ‘케세라세라’나 ‘카르페디엠’ 류의 잠언에 익숙하다. 온 세상이 나서서 즐기라고, 인생은 네 것이라고, 오늘의 행복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부추기며 ‘궁디를 팡팡’하니 2015년의 인간은 즐기지 아니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즐김’의 방법이나 형식이 너무나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솔로가 보낼 수 있는 훈훈한 크리스마스는 보통 파티로 귀결된다. 연인과 오붓하게 보낼 수 없다면 화려한 싱글답게 렛츠 파티! 나는 내 마음대로 이걸 ‘강제 파티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그 왜 있잖은가, 맥주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단 즐겨!” 식의 맥락 없고 마구잡이로 유쾌한 분위기. 청춘을 즐기고 ‘잘 나가’려면 꼭 방탕하게 맥주가 넘치도록 건배를 하고 뜬금없이 소리 질러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즐김’은 늘 이렇게 술, 이성, 멋진 장소, 노래, 춤, 게임 등의 스펙터클로 가득 차 있다. SNS가 활발해지면서 그렇게 즐기는 나를 전시하고 타인의 삶을 구경하는 것 또한 또 다른 차원의 파티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만 유효하다. 어떤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짜 즐김’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식의 유흥이 전혀 즐겁지 않으며, 오히려 불편하고 답답할 수 있다. 오래 전의 한 크리스마스에, 나는 사람 많은 곳이라면 질색하는 주제에 영혼이 빠져나간 채로 콩나물시루 같은 클럽에 서서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다. 온 세상이 흥에 겨워 있는데 혼자 집에 있으면 어딘가 볼품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괜히 찍어 바르고 어디든 나가려고 기를 썼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때의 나는 전혀 즐기지 못했다. 즐겨야 한다는 압박에 등을 떠밀려 나 자신을 참신한 방식으로 괴롭혔을 뿐이다.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듯, 어떤 날을 어떤 방식으로 꾸려갈지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기쁨이나 슬픔, 외로움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고, 억지로 따르거나 바꿀 수 없다. 그 감정을 누군가 빼앗아서 대신 짤랑짤랑 으쓱으쓱 하게 내버려 두지 말자. 이번 크리스마스에, 나는 강제 파티에 참여하는 대신 대청소를 감행하고자 한다. 방인지 마구간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라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아기 예수의 기분을 대리 체험하기 때문에. 아주 즐거울 것이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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