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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원 美갑부도 더이상 믿지 않는 '아메리칸 드림'

바람아님 2016. 1. 9. 09:37

(출처-조선일보 2016.01.09 김성현 기자)

제조업 몰락·금융업 팽창 속 미국 철강산업 경쟁력 잃으며 범죄도시로 전락한 '영스타운'
유명 인사·서민 등 10명 삶으로 미국의 과거와 현재 되돌아봐

미국, 파티는 끝났다 책 사진미국, 파티는 끝났다 | 조지 패커 지음|박병화 옮김

글항아리 | 636쪽|2만8000원


"1970년대 인기 있던 공상과학 소설을 보면 '인간과 로봇이 걸어서 달나라에 간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2008년에는 '은하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지배한다느니, 행성을 약탈하고 

재미로 살인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인터넷 결제 서비스 페이팔(PayPal)의 공동 창립자인 피터 틸(49)은 2014년 재산 22억달러

(약 2조6000억원)로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 갑부 4위에 올랐다. 

하지만 틸은 "이렇게 엉망인 우리의 현실 사회는 매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 정치는 미쳐 돌아가고, 훌륭한 정치인을 뽑는 것이 힘들어졌으며,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뉴요커'의 기자로 이라크 전쟁에 관한 논픽션을 발표했던 저자는 신작 '미국, 파티는 끝났다(The Unwinding)'에서 

틸의 이 말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실종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은 제조업의 몰락과 금융업의 무분별한 팽창,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삼각 축으로 삼아 1970년대 이후 40년간 

미국의 변화상을 추적한다. 책에 묘사된 미국의 풍경은 잿빛에 가깝다. 그만큼 우울하고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오하이오의 제철 도시 영스타운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이다.

미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였던 영스타운은 제철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제철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 급감과 범죄율 상승을 겪었다. 영스타운의 범죄율은 미국 전체는 물론 오하이오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미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였던 영스타운은 제철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제철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 급감과 범죄율 상승을 겪었다. 영스타운의 범죄율은 
미국 전체는 물론 오하이오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러스트와이어닷컴

미국 철강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대형 제철소들이 잇달아 폐업하자 이 도시의 실업률과 범죄율이 치솟았다. 

1970년 14만명에 이르던 인구는 20년 뒤에 9만5000명으로 줄었다. 

일부 지역은 빈집이 40%까지 늘면서 범죄의 소굴이 됐다. 

1980~1990년대 영스타운은 살인 사건 순위에서 미국 10위 안에 들었다. 

10대가 포함된 마약상과 갱단은 걸핏하면 총격전을 벌였다. 

사건 담당 검사는 자신의 집 주방에서 총격을 받았다.

반면 월 스트리트의 금융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탈규제의 벌판을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한국계 소니 킴이 연루된 주택 담보대출 사기 사건은 적절한 규제 없이 금융이 방치될 때 드러날 수 있는 맹점을 

그대로 보여줬다. 문신 가게의 주인이었던 소니는 탬파 일대에 100여채의 주택을 거래하며 수백만달러의 이익을 챙겼다. 

이상한 건 구입자 명단이었다. 대부분 마약꾼과 방화범, 정신병자들이었다. 버려진 부동산을 100달러의 헐값에 사들인 뒤 

최대 30만달러의 거액에 팔아넘기는 수법도 비상식적이었다. 실거래 없이 문서상으로만 거래한 뒤에 주택 담보대출을 받아 

챙기는 사기 범죄였다. 소니 킴에게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 가운데 하나가 리먼 브러더스였다. 

리먼 브러더스는 2008년 파산했다.


옛 철강 도시 영스타운의 범죄율 그래프책의 주제는 무겁고 진지하지만 다루는 방식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하원 의장을 역임한 뉴트 깅리치, 작가 레이먼드 카버, 월마트의 창립자 샘 월튼, 

흑인 힙합 가수 제이지 같은 유명 인사부터 직장을 잃거나 파산해서 하층민으로 

전락한 서민들까지 10여명의 삶을 빠르게 '교차 편집'한다. 

1978년부터 대략 10년 간격으로 '점프 컷(jump cut)'하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로 다가올수록 시간 간극을 줄여서 극적 밀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복잡한 구성 때문에 초반 100쪽까지는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더디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할리우드 범죄물을 보는 듯한 강렬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신세기의 찬가'보다는 '세기 말의 블루스'에 가까운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쯤 될 것이다. 

우선 세계 강대국의 지위를 힘겹게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내적 고민을 엿볼 기회가 된다. 

"20세기 대부분 미국 사회는 잘 굴러갔다. 설령 이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어떤 대안이 있단 말인가?"라는 

자문(自問)이 보여주듯 저자의 시선은 대체로 어둡고 냉소적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진단이 쏟아지는 한국에도 충분히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의 성장판이 닫히고,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청춘이 늘어나는 한국의 미래상은 미국과 다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나면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