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1.05 팀 알퍼 칼럼니스트 김도원 화백)
한국에 온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가 '빨리빨리'라는 건 오래된 농담이다.
사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한국 어디에서 누굴 만나든 "빨리 주세요" "빨리 와" "빨리해" 같은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누군가를 '조금 느린 스타일'이라고 평한다면 그건 대체로 그이를 욕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빨리빨리' 문화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이 '빨리빨리' 문화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예전엔 내 동료가 일을 맡기면서 "최대한 빨리 해달라"고 하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엔 나도 그 "최대한 빨리"라는 말을 자주 쓴다.
상대에게 "천천히 해도 돼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싫어진다.
한국에 정착하기 전 스페인에서 1년 정도 산 적이 있다. 한국과는 반대로 아주 느긋한 국민성으로 유명한 나라다.
한국에 정착하기 전 스페인에서 1년 정도 산 적이 있다. 한국과는 반대로 아주 느긋한 국민성으로 유명한 나라다.
그 나라에선 '빨리빨리'라는 말 대신 'manana(내일)'라는 말을 자주 쓴다.
보통 이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다음 주'나 '다음 달'이라는 의미로 쓴다.
가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내일' 문화도 중독성이 있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내일' 문화도 중독성이 있었다.
스페인에 살 때 보통 지각을 했고, 해변에 나가 노느라 일을 팽개친 적도 많았다.
스트레스란 단어 자체를 잊고 살았다. 대신 거기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 기억도 없다.
한국에선 항상 '빨리빨리'라는 말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그 결과 내가 해낸 일의 성과에 놀라게 된다.
이젠 사람들이 "혹시 언제쯤 끝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묻기도 전에 폭풍 같은 속도로 일을 마치는 법도 배웠다.
부작용도 있다. 스페인에서 살 때와 달리 난 너무나 조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빨리빨리' 문화와는 거리가 먼 나의 모국 영국에 가도 변함없다.
가게에 가면 계산대 점원의 속도가 너무 느려서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그 점원에게 "좀 빨리하면 안 돼요?"라고 소리지르고 싶어진다.
한국이 날 망친 걸까. 그래도 난 남은 생을 이 나라에서 살 것이니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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