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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히틀러 자서전

바람아님 2016. 1. 13. 00:39
한국경제 2016-1-12

히틀러는 갓 서른에 독일노동자당에 입당해 곧 선전 책임자가 됐다. 얼마 뒤 뮌헨의 대형 맥주홀에 모인 군중 앞에서 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이름을 붙였다. 나치스라는 줄임말로 더 유명한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의 신호탄이었다. 25개 강령도 선포했다. 민주공화제 타도와 베르사유 조약 파기, 민족주의와 반(反)유대주의, 백화점과 다국적 기업 퇴출 등이 골자였다.

3년 뒤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에 자극받은 그는 봉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군부와 관료의 지지를 얻지 못해 실패하고 투옥됐다. 그는 옥중에서 더 극단적인 계획을 세웠다. 민중의 힘으로 정부를 무너뜨리고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영토를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내세운 타깃이 유대인이라는 ‘적’이었고, 공격의 무기는 ‘증오’였다. 이런 구상을 그는 감옥에서 구술한 자서전 나의 투쟁에 담았다. 1925년 출간된 이 책은 그의 집권 후 나치당원의 필독서가 됐고 2차대전 종전 때까지 1200만부나 팔렸다.


1945년 그의 최후와 함께 ‘사회적 금서’가 됐던 이 책이 저작권 소멸과 함께 독일 서점에 다시 등장했다. 독일 현대사연구소가 히틀러의 왜곡된 사상을 반박하는 주석 3500개를 달아 다음 세대에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하겠다며 내놓은 것이다. 책값이 59유로(전 2권, 약 7만8000원)나 되는데도 초판 4000부의 4배 가까운 1만5000부 선주문이 쏟아졌다.


독일인의 반응은 엇갈린다. ‘역사적 증거로 나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것’ ‘악마에 주석을 붙인 책’으로 양분되는 양상이다.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부추긴 것처럼 반난민 정서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작년에만 중동 난민 100만여명이 독일로 넘어온 상황에서 민족주의와 인종 차별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쾰른 등에서 난민들의 집단 성추행 사건까지 겹쳤으니 그럴 만하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대중의 증오에 불을 붙이는 정치 선동의 폭발력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쥐떼에 비유하면서 ‘수전노’를 죽이자고 부추긴 비극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좌절과 불만으로 팽배한 사람들은 이를 외부 탓으로 돌리고, 선동자는 그 증오의 대상을 공공연히 지정한다. ‘다같이 증오하면 신의 사랑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하이네)고 하지 않았던가.

예나 지금이나 불안과 혼란이 지배하는 사회에는 선동과 증오가 판치기 쉽다. 히틀러는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는다”고 했다. 큰 선거를 잇달아 치러야 하는 우리가 더 경계해야 할 말이다.


고두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