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이가 이번 겨울방학 동안 다닐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학원 홍보물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 때마다 돌아온 대답이다. 학원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중3이면 고등학교 과정 한 번은 봤어야 한다. 이렇게 공부를 안 해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나를 꾸짖었다.
“제가 회사를 다니다 보니 바빠서”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 그제야 “아, 그러시군요” 한다. “아이가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할 예정인가요”라고 묻는 곳도 있었다. 아직 어느 고등학교에 배정될지도 모르는데, 문과를 갈지 이과를 갈지도 안 정했는데 말이다. 한 학원에선 “어머니, 이건 절대 공포 마케팅이 아닙니다. 고2 여름방학부터는 해당 학과에 맞는 스펙을 쌓아야 하니 학교 공부는 그 전에 끝내야 합니다. 경시대회 준비는 지금 시작해야 해요”라고도 했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수시전형으로 선발하는 인원이 정시전형 선발 인원보다 많아진 건 오래전 일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적을 ‘스펙’을 쌓으려면 대학과 학과를 염두에 두고 그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대학 전형 수는 2000개가 넘는다. 어느 전형으로 대학을 갈지 학생의 결정에 따라 입시 준비도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불안한 학부모는 학생부도, 수능도, 내신도 포기할 수 없다. 결국은 모든 전형을 다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내신 준비 하나만 하더라도 영어·수학은 기본이고 국어도 과학도 미리 해둬야 한다. 학원의 공포 마케팅이라고 웃어 넘기기엔 석연치가 않다.
아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지’라며 ‘좋은 엄마’ 되기를 다짐했지만, 대한민국의 입시 시스템 속에서 초연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금액을 학원비로 지출하면서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지금 투자해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하겠지’라고 위로한다. 이 위로가 나를 위한 건지 아이를 위한 건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명색이 교육 정보를 다루는 기자인데도 내 자식 교육에 적용하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공교육은 무너져 가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반고의 경우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사교육비 부담은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게다가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없는 고용 없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 교육의 패러다임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겨울방학 학원가를 배회하며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박혜민 메트로G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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