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생을 스크린에 옮길 수는 없겠지만 영화 같지 않은 인생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으나 저녁에 본 모니터의 부음 기사가 눈시울을 때렸다. “시대의 대표적 지성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별세했다. (…) 20년 넘게 감옥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은 신 교수는 (…) 진통제인 모르핀이 듣지 않을 정도로 병세가 크게 악화되자 스스로 곡기를 열흘 정도 끊었다.”
두 해 전 제주도 식물탐사. 마지막 일정은 한림수목원을 둘러보는 일이었다. 어느 나무 앞에서 특징을 살펴보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무의 이름을 보자니 은근한 속셈이 생긴 것이었다. 나무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 팻말, 나무를 함께 찍었다. 훤칠하게 자라 아름드리 줄기로 큰 그늘을 이룬 그 나무는 무환자나무. 이름 속의 ‘환자’는 액면 그대로의 환자(患者), 페이션트는 아니나 뜻은 서로 통한다. 살아있는 사람 치고 환자 아닌 이가 어디 있던가. 집에 심으면 우환이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로 무환자(無患子)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 무환자나무.
일면식은 없었지만 선생의 책은 더러 읽었고, 선생의 붓글씨로 화제가 된 ‘처음처럼’은 아주 많이 마셨다. 아마 나 같은 이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 스스로 기공을 닫고 낙엽을 준비한다. 건조시킨 잎을 모조리 떨구어 혹한의 계절을 통과하면서 또 한번 갱신하는 것이다. 이제 선생은 이승을 떠났지만 많은 이들의 가슴에 큰 나무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나무는 ‘나무야 나무야’가 되고 이윽고는 ‘더불어 숲’이 될 것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여운 속에서 우리 시대의 한 스승을 떠올린 밤. 선생의 갱신을 한편으로 부러워하며 더불어 무환자나무도 생각해 본 밤. 무환자나무, 무환자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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