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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 ⑬] 시진핑이 ‘1인 체제’ 구축에 나선 이유는?

바람아님 2016. 1. 23. 00:45
[J플러스] 입력 2016.01.21 09:51

유상철 기자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홍콩특파원, 98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중국연구소 소장을 지낸 중국통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모해나갈까요. 그에 맞춰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해나가야 할까요.
유상철 기자의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은 이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칼럼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후안강 칭화대 교수가 중국 최고 지도부 소식에 밝다고는 하지만 때론 흐름을 놓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가 책까지 펴내며 중국의 집단대통령제가 미국의 1인 대통령제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고 찬양하고 있을 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빛과 같이 빠른 속도로 ‘1인 체제’를 굳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1인자 행보가 외부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3년 말부터였다. 당시 중국을 찾았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당초 리커창 총리와의 만찬이 예정돼 있었다. 방중 목적 또한 경제 문제에 집중돼 있었다. 과거 중국 경제는 총리가 맡고 있었기에 이상할 게 없는 일정이었다.

한데 중국측에서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만찬을 리커창 총리가 아닌 시진핑이 베풀겠다는 것이었다. 이젠 경제도 시진핑이 직접 챙긴다는 시그널에 다름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진핑은 이어 관례대로라면 총리가 주재해야 할 중앙경제공작회의도 자신이 직접 회의를 이끌고 또 중요 담화까지 발표했다.

그러고 보니 2013년 11월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설립이 결정된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와 ‘국가안전위원회’ 모두 결국엔 시진핑이 이끌게 됐다.  

중국은 진(秦)·한(漢) 이래 황제와 재상의 권한을 나누는 ‘제상(帝相) 분권’의 전통이 있다.

중국 공산당 또한 총서기는 정치와 외교·안보 등 총괄적 업무를, 총리는 경제를 중심으로 구체적 사무를 맡는다. 그리고 당내 여러 소조를 두고 이를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나눠서 관리한다.

이른바 후안강이 말하는 집단 지도체제다. 총서기는 여타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으로 간주될 뿐이다.

따라서 총리가 총서기가 이끄는 소조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가 누구를 이끈다는 인상을 주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한데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에서 조장은 시진핑, 부조장은 리커창으로 분명한 상하의 차이를 뒀다.

시진핑은 이제 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 조장, 국가안전위원회 주석 신분으로 확고하게 1인 체제를 다져가고 있다.

마오쩌둥 이래 최대의 권력을 확보했으며 외관상으론 덩샤오핑의 위치를 능가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안정화, 나아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던 시점에서 시진핑의 1인 체제 구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개혁의 필요성 때문이다. 시진핑은 2013년 10월 “이제 중국의 개혁은 단단한 적을 공격해야 하고 깊은 물을 건너야 하는 시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의 개혁은 기존 이익구조를 타파해야 하는 고비를 맞았는데 이를 어느 한 부문에만 맡겨선 ‘힘이 마음을 따르지 못하는(力不從心)’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는 것이다.

결국 시진핑이 직접 나서 개혁의 완성이라는 대임(大任)을 수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역사학자 샤오궁친(蕭功秦)이 “중국은 현재 강인(强人)을 필요로 한다. 권력 집중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시진핑의 1인 체제를 가능케 하는 둘째 요인은 보시라이(薄熙來)에서 시작해 저우융캉(周永康)으로 불똥이 튀며 불거진 집단지도체제의 폐해다. 부패 혐의로 처벌된 저우의 진짜 문제는 보시라이를 감싸면서 보여줬던 그의 무리한 행태다.

저우는 보시라이 실각을 막으려 무력까지 동원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른바 2012년 3월 말의 정변설이다. 저우는 부하를 동원해 중국 권력의 심장부인 중난하이(中南海) 포위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어떻게 이런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저우는 당시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서열이 가장 낮았다. 그러나 자신이 맡고 있던 정법위원회의 권력을 극도로 팽창시킨 결과 공안과 무장경찰, 검찰, 국가안전부 등에 파벌을 형성할 수 있었고 나아가 무력 시위 내지 정변 도모까지 꿈꿀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됐다. 집단지도체제하의 분업 시스템에 따라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저우가 맡고 있는 분야엔 전혀 간여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집단지도체제는 황제와도 같았던 마오쩌둥 1인 치하의 폐해가 재발되는 걸 막기 위해 덩샤오핑이 부활시킨 것이다.

한데 그 시스템도 30년 정도 작동하다 보니 저우의 경우처럼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결과 다시 권력의 집중이 희구되며 시진핑에 의한 1인 체제 탄생을 자극하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돈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