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살며 생각하며>나팔꽃 담장을 기억하며

바람아님 2016. 2. 6. 00:38
문화일보 2016-2-5

박동규 /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참 난감할 때가 있었다. 느닷없이 찻집에서 어쩌다 만난 이가 ‘외로우십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딱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롭다고 하기도 별로여서 그냥 웃기만 했다. 누가 내게 마음속 깊은 곳에 담겨 있는 내 삶의 흔적들을 찾아내 지적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부터 나도 사람들을 만나면 눈빛이나 표정을 살펴보곤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웃고 이야기하고 차도 마시며 친숙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응대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친밀한 향기가 말처럼 퍼지는 게 아니라, 투명한 비닐로 둘러싸인 큰 풍선 안에서 무의미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관계가 사라지고 자신만의 장벽 안에 갇혀 지내는 게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모래알 세상이라고도 한다. 손잡고 살아가는 길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와 내 가족 아니면 이익이 되는 내 편만을 위해 귀와 눈을 집중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어린 날 봄방학이 되면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할머니는 양지바른 마당에 참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먼저 옆집과의 경계에 야트막하게 쌓아놓은 흙담 곁에 막대기를 꽂고 가는 철사로 줄을 얼기설기 엮어 놓았다. 그 앞에 땅을 호미로 파고 나팔꽃 씨앗을 뿌렸다. 일년초인 나팔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을 틔웠다. 할머니 댁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새벽에 나팔꽃이 활짝 핀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대문 가까이 심으면 오가는 사람들 눈에 더 잘 보일 텐데 왜 옆집과의 경계인 흙담에다 심느냐고 했다. 할머니는 나팔꽃이 자라서 그 담을 덮어 옆집과 꽃 더미로 한 집이 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나팔꽃을 심는다고 했다. 담장을 꽃으로 덮어 옆집과의 경계를 없애려는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이런 고향 마을 사람들이 바로 아름다운 삶의 하나였다고 기억된다. 그렇지만 사람들끼리의 생활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결혼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머니 집에서 골목을 벗어나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집을 얻어 살았다. 아내가 직장에 다녀서 다섯 시쯤이면 집에 왔다. 이때쯤이면 어머니가 장바구니를 들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며느리와 함께 버스 두 정거장 떨어진 전통시장에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가기 위해서였다. 얼마간은 사이좋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짝을 지어 전통시장에 잘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아내는 어머니가 시장에 갈 때면 무거운 빨랫비누를 보자기에 잔뜩 싸 가지고 가서 시장 상인들에게 나눠 주신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결혼 주례를 하거나, 제자가 집으로 인사를 올 때 선물로 빨랫비누 한 궤짝을 사서 들고 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어머니가 이 비누를 들고 시장에 갈 때 뒤따라 가 본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부 파는 아주머니나 바지락을 앞에 놓고 앉은 할머니에게 비누 한 장씩을 건네며 말꼬를 트고 나서 친해지면 전도를 하곤 하셨다. 이 비누는 시장 아주머니들과 정분을 쌓아가는 징표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삶을 알아주는 어머니의 마음 표현이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아내는 어머니와의 시장 행을 피하기 시작했다. 집을 나와 큰길만 건너면 큰 슈퍼마켓이 있고, 상품의 품질도 훨씬 좋은데 구태여 땀을 흘리며 버스 두 정거장거리를 걸어서 찾아갈 게 뭐 있느냐고 했다. 어머니도 며느리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아내는 슈퍼마켓으로 가고 어머니는 전통시장으로 각기 갈라져서 장을 보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행여나 마음이 상하지 않았나 해서 어느 날 저녁, 어머니에게 “집사람이 장 보러 함께 가지 않아서 섭섭하시지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니다, 나는 그 사람들 만나러 다니는 게 삼십 년이나 돼 친구처럼 익숙하지만, 애 엄마는 물건도 마음에 안 들 거고, 시장 상인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색해서 그러겠지, 괜찮다”고 하셨다. 이 조그마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서로의 처지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오영수의 단편소설 ‘화산댁이’를 생각했다. 화산댁이는 경주에서 삼십 리 떨어진 산골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보고 싶던, 장가간 지 삼 년이 돼 경주시에 살고 있는 출세한 아들 집을 찾아갔다. 아들 집에 갔지만, 아들 부부는 화산댁이를 더러운 오물처럼 대하는 것이었다. 그날 한밤중에 화산댁이는 화장실을 찾지 못해 하수를 흘려보내는 곳에 대변을 보고, 정원에 뿌리기 위해서 담아 놓은 통 속의 물을 퍼서 내려보내곤 방으로 들어와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밖이 소란했다. 어젯밤 물로 씻어 내려보낸 대변이 옆집으로 흘러가 그 집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화산댁이는 황급히 달려가 옆집 하수로에서 대변을 담아 들고 집으로 와서 버리려고 쓰레기통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어제 고향에서 가져와 손녀에게 준 도토리 떡 뭉치가 그대로 버려져 있는 것이었다. 화산댁이는 얼른 떡 뭉치를 꺼내고 대변을 버린 뒤 도토리 떡 뭉치를 안고는 아들 집을 나와 고향 집을 향해 타박타박 걸어간다.


화산댁이가 겪은 참담한 수모는 아들 가족과 화산댁이의 서로 다른 성장 과정과 삶의 형태가 빚은 처절한 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식이 어머니의 삶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인식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외로움은 마음의 병이라고들 하지만, 나팔꽃을 키워 흙담을 덮던 할머니처럼 마음의 통로를 여는 이해와 정서의 교감이 이뤄지는 생활을 만들어 가고자 나를 뛰어넘어 함께 사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