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태평로] 한대수씨가 다시 뉴욕으로 이사하는 이유

바람아님 2016. 2. 12. 10:39

(출처-조선닷컴 2016.02.12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가수 한대수씨는 올여름쯤 미국 뉴욕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아홉 살 난 딸 양호를 미국 공립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다.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 학교의 이상한 교육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한씨는 "나도 아내도 딸도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을 한국 학교에 계속 보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양호는 한씨가 쉰아홉에 얻은 딸이다. 
서울 신촌 한 오피스텔에 살던 한씨와 아내인 러시아계 미국인 옥사나 부부는 늦둥이 딸을 얻고 나서 
오피스텔 옆방을 사들여 두 방을 텄다. 합쳐봐야 15평 정도다. 
오피스텔 방 두 개를 터놓으니 집은 좁은데 출입문과 화장실, 부엌이 두 개다. 
'한국 포크의 첫 싱어송라이터' 한씨이지만 살림은 늘 쪼들린다. 
그의 말마따나 "일본만 해도 록음악 애호가가 7000만명인데 한국은 2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울보다 물가 비싼 뉴욕으로 간다. 
그는 "맨해튼은 너무 비싸고 퀸스나 브루클린에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양호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한다. 
왕따를 당한다거나 딱히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오히려 양호는 우리말과 영어가 자유롭고 벌써 작곡을 할 만큼 재능을 타고났다.


2014년 4월22일 서울 신촌의 한 커피숍 창가에서 전시에 내놓을 사진 수정 작업을 하고 있는 가수 한대수와 
그를 보러 온 초등학생 딸 양호. /이태경 기자

한씨는 말했다. 
"초등학교 때는 마음껏 놀고 인성과 인품을 올바르게 키워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죠.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엠퍼시(empathy)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공부, 공부,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는 것밖에 안 가르쳐요.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 정치적·종교적 이슈를 두고 토론할 줄 모르는 겁니다.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초등학교 때 가르쳐야 하는데 만날 '1 더하기 1은 2'만 외우게 하잖아요."

'정답 외우기'의 폐해는 대학생이나 신입 기자들을 상대로 강의할 때마다 겪는 일이기도 하다. 
'로크의 소유적 개인주의와 경제 정의에 대해 논하라' 같은 논술 시험을 치렀던 이 우등생들에게 '선물'이나 '친구' 같은 
소재로 에세이를 쓰라고 하면 진땀을 흘린다. 
우리 교육이 단단히 잘못돼 있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작년 여름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만난 한인 부부는 "여기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2 때까지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고 했다. 
중3이 되어야 어느 고등학교에 갈지 판단하려고 시험을 치고 성적표를 받는다. 
이들은 "캐나다 초등학교는 매일 친구들과 놀고 축구하는 게 사실상 전부"라고 했다.

한대수씨는 "한국 부모들, 특히 엄마들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려 하지 않고 자꾸 무엇인가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엄마들에게 아이는 일종의 토이(장난감)"라고 말했다. 
어려서 미국으로 건너가 히피 시대에 뉴욕서 청년기를 보낸 한씨의 말이 좀 과격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1974년 권위주의 정권의 '금지곡' 조치에 쫓겨 한국 땅을 떠나 뉴욕으로 갔다가 돌아온 한씨는 69세 노구(老軀)로 
다시 뉴욕에 간다. 
이번엔 권위주의 시대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한국 교육에 쫓겨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