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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드가 중국에 ‘칼춤’이면 북핵은 寶劍인가/[설왕설래] 항장무검(項莊舞劍)

바람아님 2016. 2. 17. 00:32

[사설]사드가 중국에 ‘칼춤’이면 북핵은 寶劍인가

동아일보 2016-02-16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검토를 두고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이라는 고사성어로 비판했다. 초나라 항우의 사촌인 항장이 연회에서 칼춤을 춘 이유가 패공(유방)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유방(중국)을 겨누는 항우(미국) 측의 칼춤’으로 보고 있고, 한국을 미국 뜻에 따라 움직이는 항장쯤으로 낮춰 본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왕 부장은 12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함께 북핵 문제의 3원칙을 ‘한반도 비핵화, 군사적 해결 반대, 중국의 안보이익 훼손 불용’이라고 강조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X밴드 레이더 범위가 한반도 방위 수요를 크게 넘어 아시아 대륙 한복판으로 침투해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직접적인 해를 준다”면서 한 말이다. 그가 북의 4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달 8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원칙을 견지한다”며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선 안 된다”고 했던 데서 세 번째를 슬쩍 바꿨다. 북의 핵 포기보다 중국의 안보 이익이 더 중요하고, 사드는 이에 배치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왕 부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서도 “북측이든 남측이든 스스로 만들어도, 가져와 배치해도 안 된다”는 말로 한국의 핵개발이나 전술핵 도입에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북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의 본질을 호도하는 발언이다. 중국에 사드가 ‘칼춤’이면 북핵은 지켜야 할 보검(寶劍)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한국 정부가 사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북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조치다. 그런데도 어제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까지 “관련국이 한반도 문제를 이용해 중국의 국가 안전 이익을 훼손하는 데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매몰돼 자국의 전략적 이해만 따지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오늘 서울에서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가 2년 8개월 만에 열린다. 중국 측이 사드 문제를 거론한다면 한국은 안보 주권 차원에서 당당히 반박해야 할 것이다. 항우와 유방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놓고 힘을 겨뤘지만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이다. 핵과 미사일의 칼춤은 북한이 추고 있다. 중국이 이를 외면한다면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 자멸한 항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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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항장무검(項莊舞劍)

세계일보 2016.02.15. 20:56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다는 뜻이다. 해하성에서 유방의 군사에 둘러싸여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태에 빠진 항우. 애첩 우(虞)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부른 우혜가(虞兮歌)의 한 대목이다.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는 대단했다. 기원전 207년 10월 거록성 싸움. 항우는 황하를 건너자 솥단지를 부수고 타고 온 배를 침몰시켰다. 파부침주(破釜沈舟)다. 그리고 10만 군사로 진의 50만군을 물리친다.

역사는 반전하는 것일까. 그해 12월 열린 ‘홍문의 잔치’(鴻門宴). 진의 수도 함양 동남쪽 홍문에 진을 친 항우는 유방을 불러들였다. 항우의 책사 범증은 생각했다. “유방을 제거해야 한다.” 왜 그랬을까. 함곡관에서 진의 군사 20만명을 생매장한 항우, 함양에 먼저 도착해 덕치(德治)를 베푼 유방. 누가 이기겠는가. 범증은 잔치에서 항우의 사촌 항장에게 칼춤을 추다 유방의 목을 베라고 명했다. 성공했다면? 역사는 달라진다. 하지만 유방의 전략가 장량은 호위대장 번쾌에게 이를 막도록 했다. 항우 앞에 나선 번쾌 왈,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간신의 이간질에 넘어가 공신(유방)을 죽이려 하옵니까.” 호걸 항우, 결국 유방을 살려 돌려보낸다. 그것이 패착일 줄이야. 항우는 결국 해하성 패배로 죽음을 맞았다.


2000년 넘게 이어진 이야기 초한(楚漢) 쟁패의 핵심 내용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말했다.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 항장이 칼춤을 춘 의도는 유방을 죽이려는 데 있다는 뜻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북핵을 핑계로 중국을 감시하려는 것이라는 불만을 담은 말이다.


적절한 말인가. 검무(劍舞)는 누가 추고 있는가. ‘핵 검무’를 추는 쪽은 북한이다. 젊은 김정은이 칼자루를 잡고 있다. 중국은? 핵 검무를 항미(抗美) 전략에 이용한다. 북한무검(北韓舞劍)은 의재적화(意在赤化)요, 의재항미(意在抗美)가 아니던가. 그 말은 왕 부장이 해야 할 말이 아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사마소의 야심은 길 가는 사람도 안다(司馬昭之心 路人皆知).” 북핵을 이용해 미국 목줄을 죄려는 중국의 의도는 장삼이사도 알고 있지 않은가.


‘정관정요’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유계가 당 태종에게 한 말, “나라가 장구하기를 바란다면 뛰어난 언변과 박식을 좋아해선 안 된다.” 하물며 이웃을 납득시키지 못할 아전인수의 말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