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트렌드 돋보기] 우리 안의 嫌韓

바람아님 2016. 2. 17. 18:56

(출처-조선닷컴 2016.02.17 김윤덕 문화부 차장 )


김윤덕 문화부 차장라딘(Ladin)족은 이탈리아 북동부 알프스 중심부에 있는 돌로미티 지역에 산다. 
인구 3만9000명에 대국 이탈리아·독일 사이에 끼어 있지만 무려 2000년 동안 자기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살아왔다. '실용'이 생존 비결이었다. 
해발 2000~3000m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험지에 살지만 이들은 독일어와 이탈리아어·영어에 능하다. 
관광업이 밥벌이라서다. 지독한 근면 성실도 생존 철학이다. 
어영부영 살다간 추위와 굶주림에 무너지기 십상이니 일곱 마을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혹독한 자연과 
싸운다. 그 중심에 민족적 자긍심이 있었다. 
이들은 신문과 TV를 모국어인 라딘어로 제작한다. 전통 음식을 먹고 전통 복장을 즐겨 입는다. 
4년간 이탈리아 주재원으로 살면서 소수민족을 연구한 이창현 코트라(KOTRA) 박사는 "이들 생존 방식이 초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생존 전략 중 으뜸이라는 '자긍심' 석 자가 명치에 걸렸다. 
바야흐로 '헬조선'이란 말이 범람하는 '셀프 혐한(嫌韓)' 시대다. 당장 먹고살 일 암담한 청년층뿐 아니다. 
"재패니스?"냐고 묻는 외국인에게 "코리안"이라고 답하며 자랑스러웠던 적 얼마나 될까. 
그 많은 나라 중 난 왜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태어난 건지 자괴한 적은 없는가.

그런데 '제3 한류(韓流)'를 취재하면서 기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가 치부로 여기는 것을 바깥에선 한류를 꽃피운 저력으로 보았다. 
우리는 압축 성장이 낳은 '빨리빨리'의 폐해가 대한민국을 사고 공화국으로 만들었다고 자조하지만, 외국인들은 불같이 
끓어오르고 사그라지는 한국인 특유의 성정(性情)이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한 도시로 바꿔놨다고 평했다. 
사교육 주범인 영어도 한류엔 일등 공신이다. 
한류를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은 영어에 대한 한국인들의 투지와 욕심이 한류가 일류(日流)를 압도한 결정적 토대가 됐다고 
말한다. 
1000번 외침(外侵)에 시달린 '굴종의 역사'조차 한류엔 날개였다.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는 평화와 굴기(崛起)의 역사에 세계는 경의를 표했다. 
툭하면 미사일 쏘아 올리는 미치광이 집단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도 삼성과 K팝과 한식을 만들어 지구촌을 열광시키는 나라! 
'코리안 쿨' 저자 유니홍은 "운명에 대한 천년 묵은 분노와 한(恨)이 한국인 끈기와 지구력의 원천이었고, 
이것이 글로벌 문화 강국의 바탕이 됐다"고 썼다.

'슬픈 족속'은 윤동주의 시(詩)다. 
'흰 수건 검은 머리에 두르고, 흰 고무신 거친 발에 걸리운 채, 흰 띠로  가는 허리 질끈 동여맨' 
이 족속은 슬픔의 강물에 마냥 떠밀려가지 않았다. 
운명의 강을 거슬러 오른 연어처럼 전쟁과 가난, 구제금융을 이겨냈고 모두가 삼류라 비난했던 한류로 세계를 물결치게 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족속인지 모른다. 
또다시 불어닥친 사나운 북풍(北風) 앞에서 우리 안의 혐한과 분열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