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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한국 지도부 현재 이 순간의 의미 알고 있나

바람아님 2016. 2. 20. 07:42

(출처-조선닷컴 2016.02.19 강천석 논설고문)

김일성·김정은의 확신과 誤判 너무 닮아
우리가 상황 통제 못 하면 상황이 우리를 삼킬 것

강천석 논설고문 사진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 부근에서 인민군의 첫 총성(銃聲)을 듣고 '앞으로 3년 동안 100만명의 
국민을 살상(殺傷)하는 비극의 시작'이라고 직감(直感)한 사람이 있었을까. 
하루하루에 묻혀 돌아가는 일반 국민은 논외(論外)다. 
매일 적정(敵情)을 주시(注視)해온 일선 지휘관이나 안보를 책임진 국가 지휘부는 어땠을까. 
그들 가운데는 서부·동부전선에서 동시에 올라온 기습 보고를 접하고 본격적 침략 전쟁이 
발발(勃發)했다고 깨달은 사람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총소리가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고 70년 동안 남북 분단을 고착(固着)시키는 
출발이 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역사 속 현재의 의미를 현장에서 정확하게 포착하기는 그만큼 어렵다.

북한은 자신이 저지른 전쟁의 앞날을 예측하고 있었을까. 
전쟁은 주모자(主謀者) 김일성과 박헌영이 생각도 못한 방향과 속도로 전개됐다. 
그들은 한 달 안에 부산까지 쳐 내려가 대한민국을 바닷속에 밀어 넣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전쟁이 멈춘 후 김일성과 박헌영은 전쟁 개시의 오판(誤判)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정치 투쟁을 벌여 패배한 상대에게 
책임을 몽땅 뒤집어씌워 집단 처형했다. 
역사 속 현재의 의미에 무지(無知)하기는 가해자(加害者)라고 다를 게 없다.

패전(敗戰)하게 될 전쟁을 시작하거나 자기가 만든 위기에 짓눌려 패망(敗亡)하는 국가 지도자가 반드시 비합리적 인간은 
아니다. 그들도 객관적으로 정세를 분석하고 자기 능력과 한계를 평가하면서 승산(勝算)과 이득이 확실할 때만 행동에 
뛰어든다. 그러나 한 번 일어난 사건은 다가올 다음 사태의 방아쇠를 당기고, 그다음 사건은 다다음 사태의 방아쇠를 당기며,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집권 3년차 무모한 듯 영리하게 핵과 미사일 위기를 도발하며 자신만만해하는 김정은 모습은 6·25 당시의 김일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김일성보다 몇 살 어린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비슷한 확신과 오판(誤判)에 갇혀 있는지 모른다.

북한이 핵 없는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남북 군사 예산 규모가 70년대 중반 역전된 이래 이제 4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북한이 재래식 군비(軍備)의 
남북 균형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이 원하는 대로 미·북이 수교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꾼다고 해서 
기울어진 균형이 자동 회복되지도 않는다. 북한은 남북 국력(國力) 격차 속에서 자신들의 핵 집착(執着)을 망상(妄想)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대안(代案)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권력 교체가 말처럼 이뤄지는 일은 아니다. 
한·미 동맹을 흔드는 핵무기 독자 개발 방안은 현실성은 차치하고 먼저 잃고 들어가는 게 너무 많다.

한반도 핵위기와 같은 유(類)의 핵위기는 교과서에 전례(前例)도, 해법(解法)도 나와 있지 않다. 강도(强度)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 국민이나 미국의 전략가가 북핵 사태에 마찬가지로 무력감(無力感)을 느끼는 건 이 때문이다. 
핵 시대가 열린 이래 핵 보유국(북한)이 핵무기를 갖지 않는 나라(한국)에 대해 '핵불소나기' '핵공격' '핵참화'라는 말로 
협박한 경우는 없다. 몇 안 되는 핵무기를 가진 나라(북한)가 그보다 수백, 수천배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미국)를 
위협한 일도 없다. 이런 언동은 상대 국가의 선제(先制) 공격을 불러올 위험 때문에 금기(禁忌)로 돼 있다. 
북한은 교묘하게 또 아무렇지 않게 금지선을 넘나들었다.

모든 국가는 자기의 전략 카드는 숨기면서 상대 국가가 쥐고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자기의 카드를 상대에게 넌지시 보여줌으로써 상대의 도발 행동을 사전에 억지(抑止)하는 
지혜다. 미국과 소련은 냉전 45년 동안 이런 경기 규칙을 지켜 핵 참화를 막을 수 있었다. 
한반도에는 경기 규칙 자체가 없다. 상대의 의표(意表)를 찌르려고만 해왔다. 
상대의 위험한 탈선(脫線)을 막는 데는 압박의 강도 못지않게 압박의 내용이 반드시 실천에 옮겨진다는 상대의 신용 확보가 
중요하다. 인플레 속에선 말도 돈처럼 가치가 떨어진다. 북핵에 대한 소신(所信)이 넘쳐 말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한반도는 갈수록 신호등(信號燈) 고장 난 네거리가 과속(過速)차량으로 붐비는 모습을 닮아간다.

한국과 동맹국은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지하는 데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 
북한의 손발을 묶는 데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면 동맹국의 어떤 병기(兵器)를 도입하는 데도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람이 상황을 관리하지 못하면 상황이 사람을 삼켜버린다. 우리는 그런 소용돌이와 마주쳐 있다
역사 속 현재 이 순간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땐 의미를 알아봤자 소용이 없다. 
진박(眞朴), 가박(假朴)을 감별하고 주도권 경쟁에 여념이 없는 한국 지도부가 현재 이 순간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