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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엄마의 밥상

바람아님 2016. 2. 23. 23:58
국민일보 2016.02.23. 18:31

간단하게 나물 두어 가지와 땅콩, 잣 부럼으로 정월대보름을 보내며, 엄마가 차려 주셨던 소박하지만 풍성했던 정월대보름 식탁이 엄마의 손맛과 함께 그리워졌다. 조상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정월대보름 음식의 의미도 모른 채 맛있게 먹었던 오곡찰밥과 나물반찬, 부럼.

음식은 때로 신비로운 마법사의 역할을 한다. 엄마의 밥상은 아스라이 멀어져간 나를 찾아낼 수 있는 기억이고 마음에 새겨진 맛있는 추억이다. 엄마의 품이고 손결의 감촉이며, 편안하고 따뜻한 사랑이 있는 고향 같은 것이다.

문득 엄마가 해 준 뜨거운 밥 한 숟가락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정월대보름이 그런 날이었다. 엄마가 만들면 무엇이든 맛이 다르다. 엄마의 손맛은 마음의 맛이니까. 별스러운 재료가 아니어도 별난 손맛으로 특별한 맛을 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엄마의 손맛은 어디서 오는 걸까.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엄마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따뜻한 사랑과 정성과 위로를 먹는 것이다. 어미 새가 새끼에게 모이를 물어다 먹이듯 새벽같이 일어나서 오감을 동원하여 정성껏 손맛으로 차린 밥상. 지금도 입안에서 맴도는 엄마의 맛은 비록 지금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생명의 원천이고 건강이며 감성이다.


소중한 엄마의 밥상을 잠시 잊고 살다가 정월대보름을 맞아 엄마의 밥상을 기억하며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투정까지 섞어 엄마의 밥상을 받았던 아쉬운 시절이 있었음에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엄마의 사랑과 향내와 음성과 손결의 어루만짐이 영혼 깊은 곳에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시골밥상 같았던 엄마의 밥상. 냉이된장국, 무생선조림, 나물무침, 각종 조림, 묵은지청국장찌개, 파김치, 겨울 동치미 등등. 기억 속에 또렷이 존재하는 엄마의 손맛을 다시는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젖어오며 오늘 더욱 마음이 고프다.


김세원(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