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 지면에서 성격 특성에 따라 내면에 형성된 사랑의 정의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마찬가지로 각 학문도 사랑에 대해 서로 다른 정의를 제시한다. 진화심리학은 사랑을 ‘자신의 생존에 유익한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정신분석학은 사랑을 초기 애착 대상을 복원하려는 무의식적 노력이자 병리적 상호의존 행위라고 규정한다. 생물학은 사랑을 호르몬의 작용이라 본다. 낯선 호르몬에 대한 매혹이 사라지면 사랑의 열정도 식는다. 다양한 경로로 사랑의 실체가 밝혀지며 신비감이 사라진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사랑을 경험하는 일에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듯 보인다. 밀당을 즐기거나 썸 타는 관계에 머무는 것이 적당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 많은 이유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진짜 마음은 단 하나, 불안감이다. 거절당했을 때의 낙담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양보나 배려가 손해 보는 일일까 봐 불안해한다. 연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을까 봐, 사랑 때문에 미래가 흔들릴까 봐 불안이 크다. 불안한 젊은이에게 사랑이란 썸 타는 관계 정도가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융 학파 현대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원형 속에 현대인의 불안감이 스며들어 다양한 형태로 변형돼 표현된다고 제안한다. 마술사 원형은 위험사회의 사기꾼이 되고, 전사 원형은 분노지수 높은 사회에서 폭행범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 원형도 불안에 오염돼 난봉꾼이 되거나 썸만 타다 만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