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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패션과 근육 가꾸기에 몰두하는 남자

바람아님 2016. 4. 3. 00:30
[중앙일보] 입력 2016.04.0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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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소설가


은행 창구 고객용 의자에 앉아 있다가 잡지꽂이에서 남성 잡지를 보게 되었다. 여성 잡지가 적어진 대신 처음 보는 남성 잡지들이 눈에 띄었다. 시사 교양을 다루는 기존 남성 잡지와는 달리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만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 페이지마다 멋진 남자들이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는 책장을 넘기면서 이 책의 주요 독자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궁금해졌다. 남자들의 삶이 여기까지 왔구나 싶기도 했다.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표시하는 기호다. 특히 여성에게 패션은 생존 권력인 남성을 유혹하는 도구였다. “가장 성공적인 옷차림은 가장 섹시한 옷차림이다”는 패션 업계의 특명은 모든 이를 설득했다. 물론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미약했던 오래전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패션은 상징계 내에 자리가 먼저 정해진 다음 그에 합당하게 뒤따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본말이 전도돼 보인다. 스타일을 먼저 가꾼 다음 그에 적합한 사회로 진입하고자 꿈꾸는 욕망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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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패션과 스타일 가꾸기에 관심 기울이는 남자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겉모습을 가꿈으로써 나르시시즘적인 자기만족을 얻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외모 가꾸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여성들도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자신감이나 자기존중감이 근본적으로 증진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 속에서 알아차리게 된다. 그 좌절감 때문에 더욱 겉모습 꾸미기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신체나 외모 가꾸기에 관심 많은 이들의 내면에 있는 감정은 불안감이다. 특정 옷차림이나 화장이 타인의 무시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거라 믿는 마음이 있다. 옷차림만으로 특별한 사람이 되거나 특정 집단에 소속된다고 믿는 마음도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체 가꾸기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내면에 있는 마음은 박해 불안이다. 외부에 힘센 존재가 있어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망상 때문에 근육질의 큰 몸을 만들고자 하거나 자칫 건강염려증에 포박된다. 건강염려증은 “신체에 대한 다양한 염려나 불편을 호소하는 증상으로, 박해 불안이 자신의 신체 부위나 신체기관에 투사된 결과다.” 남자들의 패션 스타일 몰두나 근육 가꾸기는 당사자가 내면의 불안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다. 몸짱 되기를 소망하는 청년은 나이 들면서 보양식과 건강보조식품을 찾아다니는 중년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