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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눈치 없는 남자는 유능하고 행복하다

바람아님 2016. 4. 17. 00:06
[중앙일보] 입력 2016.04.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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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소설가


오래전 만화가 고우영 선생님의 『삼국지』를 탐독한 적이 있다. 작가가 해석한 등장인물 캐릭터가 흥미로웠는데 그중 인상적인 인물은 유비였다. 그는 장비처럼 용맹하거나 관우처럼 의리 있는 장수도 아니고 제갈량과 같은 전략가도 아니었다. 목숨 걸고 지키는 신념도, 은혜에 보답하는 의리도 없었다. 위험 상황에서는 도망부터 치는 겁쟁이에다 주변 눈치조차 볼 줄 모르는 인물이었다. 작가는 그를 ‘쪼다 유비’라 불렀다.

그 작품에서 내가 읽은 작가의 의도는 “유비가 유능한 리더가 될 수 있는 비밀은 그의 쪼다 기질에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 심리에 대해 이해할수록 ‘쪼다 유비’도 더 깊이 이해되었다. 실존에 대한 불안이 없는 사람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신념이 필요하지 않다.

약함에 대한 불안이 없는 사람은 온몸에 용맹스러움을 장착할 필요가 없다. 억압적 타인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주변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환경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호불호 없는 상태로 살아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유비의 ‘쪼다스러움’은 성장기에 잘 기능하는 부모에 의해 양육된 사람의 특징이었다. 부모 마음에 들기 위해 본성을 억압하거나 거짓 자기를 만든 경험 없는 사람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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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치료사인 버지니아 새티어는 개인이 타고나는 고유한 자유 다섯 가지를 꼽았다. ①과거나 미래에 포박당하지 않은 채 ‘지금 이곳’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자유 ②생각해야 하는 것보다 떠오르는 대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 ③느껴야만 하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유 ④허락받거나 기다리지 않고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있는 자유 ⑤안전을 염려하며 조심하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자유. 이러한 자유를 보장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자존감 높고 역량을 잘 발휘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필요나 소망을 성취하는 데 삶의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능동적으로 외부 세계에 대처하는 힘을 갖는다.

‘쪼다 유비’ 카리스마의 핵심에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주변 눈치를 보지 않았고 목표를 향해 직진할 때 비겁함을 감수했다. 내면의 직관과 통찰에 곧바로 닿을 수 있을 만큼 마음 깊이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듯하다.

유비의 덕목이 현대에도 유용한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오늘날에도 눈치 없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는 점이다. 눈치껏 비위 맞춰주기를 기대하는 주변 사람은 복장이 터지겠지만.

김형경 소설가